우주에서 온 ‘시그널’
우주에서 온 ‘시그널’
  • 김영돈
  • 승인 2016.03.26 18:20
  • 조회수 29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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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편에서 노래가? 

 

1969년이었습니다. 아폴로 10호에 탑승한 우주 비행사들은 달의 뒤편을 비행하면서 희한한 경험을 합니다. 쓰고 있던 헤드폰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겁니다. 흡사 노래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지구로부터 온 신호는 아니었습니다. 달의 뒤편에 진입했을 때 아폴로 10호는 지구와 통신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습니다. 달의 뒤편에서는 무선 교신을 위한 전파가 달에 가로 막혀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승무원들의 대화는 우주선의 블랙박스 격인 녹취록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거 보고해야 되나?

 

아폴로 10호의 녹취록, 미항공우주국(NASA) 제공
아폴로 10호의 녹취록, 미항공우주국(NASA) 제공

 

당시 녹음된 음성과 기록을 보면 승무원들은 이 소리를 지구에 보고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교신이 끊어진 상태에서 생긴 현상이었기 때문이죠. NASA는 이 녹취록을 1976년까지 기밀로 유지했습니다. 음성 기록은 2008년까지 40년 동안 비공개 상태였죠. 최근 과학 전문 채널 사이언스의 다큐멘터리 <나사의 미해결파일(NASA’s unexplained files)>에 보도되며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소리가 전파들의 간섭으로 일어난 소음일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승무원들은 이 소리를 ‘노래’ 혹은 ‘휘파람’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아폴로 15호에 탑승했던 우주 비행사 알 워든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아폴로 10호 승무원들은 우주에서 나는 소리에 익숙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면, 정말로 특이한 것이 잡혔다고 본다"는 맥락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 소리를 직접 들은 승무원들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라고 술회합니다.


우주에서 오는 소리들

 

NASA의 오디오 파일을 들을 수 있는 사운드 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nasa)
NASA의 오디오 파일을 들을 수 있는 사운드 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nasa)

 

이런 가운데 NASA는 지난 2014년 우주의 소리를 모은 62개의 오디오 파일을 공개했습니다. 이중에는 1997년 발사된 카시니호가 녹음한 토성의 소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폴로 10호의 승무원들이 들었던 소리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죠.

 

흔히 진공 상태의 우주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파 같은 형태로 전달되는 소리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아날로그 TV에서 신호가 잡히지 않는 채널을 틀 경우 ‘치익’하는 잡음와 함께 하얀 노이즈가 잔뜩 낀 것을 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TV의 잡음은 고주파가 섞여있어 인상을 찌푸리며 황급히 채널을 돌리게 만들죠. 이러한 잡음도 우주로부터 오는 신호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우주 배경 복사’라고 부릅니다. 이 잡음은 지구의 하늘 어느 방향을 향해도 일정하게 잡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빅뱅 직후 태초의 우주로부터 오는 빛이 긴 시간 여행으로 변형된 형태죠. 이 잡음의 구체적인 원인은 1964년 미국의 전파 천문학자 아노 앨런 펜지어스와 로버트 우드로 윌슨이 발견했으며 그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시그널’ 되려면 ‘패턴’ 있어야

 

아폴로 10호의 승무원이 들었던 소리와 우주 배경 복사는 둘 다 우주에서 오는 소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소리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주 배경 복사는 언제나 일정한 잡음인 반면 아폴로 10호의 승무원들이 들었던 소리는 높낮이가 있는 소리였습니다. 

 

통신에서 신호(Signal)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패턴이 있는 변화를 말합니다. 빛이나 소리가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규칙적인 변화를 보이는 것이죠. 신호가 아닌 것과 신호의 차이는 패턴의 유무에 달려있습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시그널은 항상 밤 11시 23분에 작동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우주에서 오는 소리의 패턴을 찾으면 굉장한 사건입니다. 신호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달리 말하면,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그 패턴을 만들었다고 풀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에 인류가 아닌 또 다른 문명이나 고등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커지는 셈입니다. 이처럼 패턴을 해석할 수 있으면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아니라면 그저 잡음일 뿐이죠.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의 모습, NASA 제공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의 모습, NASA 제공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라는 이름의 금박 레코드가 실려 있습니다. 보이저는 태양계를 넘어 외계로 항해하는 우주선입니다. 골든 레코드에는 지구에 대한 정보와 지구의 소리를 녹음한 ‘THE SOUNDS OF EARTH’, 그리고 이것들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담겨있습니다.

 

NASA는 2013년 9월 13일 보이저 1호가 태양계와 다른 은하계 사이의 성간 우주(interstellar space)에 진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우주 어딘가 존재할 누군가 골든 디스크를 발견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죠.

 

달의 뒤편에서 들린 ‘노래 같은’ 소리는 단순히 우연이었을까요. 인류도 우주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구 밖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인류 뿐이라는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저 너머에서 누군가 보낸 신호가 오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인류가 아직 그것을 해석하지 못할 뿐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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