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가 멸종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바나나가 전염병으로 멸종해 다시는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가 화제가 됐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바나나가 없어질까?’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현재 식용 가능한 바나나는 멸종 위기에 처한 게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전염병으로 유행해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흑사병이나, 사스처럼 식물에도 치명적인 전염병이 존재합니다. 바나나를 멸종 위기종으로 몰아넣은 균은 'Fusarium oxysporum 곰팡이'가 일으키는 파나마 시들음병입니다. 줄여서 파나마병이라고 부릅니다.
1950년대 파나마 지역에서 그로 미셸(Gros Michel) 품종 바나나를 황폐화시킨 이 곰팡이는 전 세계로 퍼지면서 대부분의 바나나 재배지역을 황폐화 시켰습니다. 결국 1960년대에 Gros Michel 바나나는 생산이 중단되었죠.
이후 1960년대 중반에 'Fusarium oxysporum 곰팡이'에 저항성인 바나나 품종을 간신히 찾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흔히 먹고 있는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의 바나나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변종 곰팡이가 유행하면서 캐번디시(Cavendish) 품종마저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씨가 없고 맛과 향이 좋은 바나나를 먹기 위해 가장 우수한 단일 품종을 키우는 바나나의 경우 캐번디시 품종의 바나나를 대체할 만한 품종이 속히 개발되지 않으면 곧 바나나는 볼 수 없는 과일이 될 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도 사례 있다
역사적으로 식물에 발병한 유행병 때문에 산업 구조마저 바뀐 사례가 있었습니다. 실론, 즉 지금의 스리랑카에서 발병한 커피녹병이 대표적 입니다. 'Hemileia vastatrix' 이란 학명을 가진 이 병원균은 커피나무에 마치 녹이슨 것처럼 주황색 가루가 묻은 점무늬가 잎에 나타나고 감염된 나무는 열매 수확량이 크게 줄며 품질도 저하됩니다.
또한 이 병은 전염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한번 발병하기 시작하면 주변 농장이 초토화되는 무서운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실론은 유럽에 커피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지였지만 커피녹병이 크게 유행하고 나서는 더 이상 커피나무를 심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커피녹병에 안전한 차나무를 심었습니다. 실론은 커피 주요 생산지에서 차 주요 생산지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생산구조의 변화는 실론의 식민 지배국인 영국의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커피대신 차나무 잎으로 만든 홍차를 유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스리랑카도 옛 실론티의 명성을 이어받아 오늘날에도 세계 최대의 차 수출국 입니다.
식물 역병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1840년대에 아일랜드에서 유행한 감자역병은 150만명에 가까운 아일랜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 시대에 아일랜드 농민들은 대부분 750평 정도 되는 작은 땅에서 일군 작물로 겨울을 나야했고 이런 좁은 땅에서는 밀이나 호밀 같은 곡류 작물보다는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더 많은 감자가 제격이였습니다.
서늘하고 습한 아일랜드 기후는 감자재배에 이점을 더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땅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자는 깨끗하지 않다고 여기는 영국의 귀족들로 인해 과도한 소작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작물이었죠. 감자는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의 식량으로서 수훈갑이었습니다.
하지만 1840년대 초반, 날씨가 흐리고 습해지며 서늘한 상태가 몇 주간 지속되더니 말라죽는 감자들이 많아졌는데 이것이 'Phytophthora infestans 병원균'이 일으키는 감자역병의 시작이었습니다. 농부들은 서둘러 밭에서 건전해 보이는 감자들을 파내어 겨우내 식량으로 쓰기위해 저장고에 저장을 했습니다.
겨울이 되어서 창고를 열어본 농민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저장해 두었던 감자들은 오간 데 없고 부패한 덩어리들만 가득 있을 뿐이였죠.
당시 아일랜드에선 어느 집이든 감자를 재배했기 때문에 그해 겨울에 사람들은 먹을 것이 전혀 없어진 셈이었습니다. 아일랜드를 식민 통치하고 있는 영국이 식량 지원을 거절하면서 기근으로 죽어나가는 사람은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간신히 생존한 아일랜드 생존자들은 대개 미국으로 이주를 했고 이 대기근은 19세기에 발생한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기록됐습니다.
식물 역병이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나?
정답은 Yes 입니다. 기원전 1000년 전부터 거의 전 세계적으로 원인 모를 환각과 정신이상, 손가락과 팔다리의 괴저 심하면 죽음까지 이르는 병이 때때로 대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병은 초기에 몸이 불에 타는것과 같은 통증이 느껴졌으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병을 ‘악마의 저주’, 또는 ‘화염’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병의 정체는 'Claviceps purpurea' 라는 병원균이 일으키는 맥각병입니다. 식물의 종자에 맥각(ergot)이라는 자실체를 생성하고, 이러한 맥각에는 알칼로이드(Lysergic acid diethylamide)와 기타 생물활성화합물을 가지고 있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게 되고, 정맥을 수축시켜 괴저를 일으킵니다.
따라서 맥각이 형성된 곡물을 다량 먹게 되면 환각증세가 나타나고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각병으로 인해 994년의 경우에는 2만 명에서 5만 명정도가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1722년에도 러시아의 군대 병사 2만병이 감염된 밀로 만든 빵을 먹고 죽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처럼 사람을 직접적으로 감염시키는 병원균뿐만 아니라 식물의 병원균도 인류의 역사, 문화,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치명적인 식물 병원균들은 생물 무기로도 등록이 돼있으며, 현재 각 나라에서는 자국에 식물병원균이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도록 수출입 농산물을 철저하게 검사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과거에 발생했던 식물 병원균으로 인한 대참사를 방지하기 위해선 경각심과 함께 식물병리전문가 육성과 그를 위한 지원, 능동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충북대학교 식물세균 및 분자유전학 실험실 석사과정
시니어 필진 신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