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에서 '고대 인류 DNA' 채취?
흙먼지에서 '고대 인류 DNA' 채취?
  • 이승아
  • 승인 2017.05.08 08:32
  • 조회수 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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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분을 떼어갈까? 출처 : IAET SB RAS/Sergei Zelensky
어느 부분을 떼어갈까? 출처 : IAET SB RAS/Sergei Zelensky

흙에서 DNA를 채취한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등 멸종한 인간의 조상을 어떻게 조사할까요. 치아처럼 잘 썩지 않는 부분이나 유골을 조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유골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하면 고대 인류의 특징이나 생활상을 그릴 수 있는데요. 고대 인류가 거주했던 동굴의 '먼지'를 통해 조사하는 방법이 새로 등장했습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고대인류학협회 소속의 유전학자 비비안 슬론 박사와 분자생물학자 마티아스 메이어 박사는 유럽과 아시아의 고대 동굴 퇴적물에서 고대 인류의 미토콘드리아를 발견했습니다. 슬론 박사와 메이어 박사가 먼지에서 DNA를 채취해낸 건 놀라운 일입니다. 

 

이 방법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Eske Willerslev 박사가 2003년에 먼저 이 방법을 이용했죠. 당시 Willerslev 박사는 고대의 환경을 주름 잡았던 고대 동물과 고대 식물들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그린란드가 한 때는 숲으로 무성한 지역이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슬론 박사와 메이어 박사는 먼지에서 DNA를 채취하는 방법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DNA에 한해서는 이 방법을 최초로 이용한 사람들입니다.

DNA가 있다는 건, 그곳에 사람이 정말 살았다는 것. 출처 : 포토리아
DNA가 있다는 건, 그곳에 사람이 정말 살았다는 것. 출처 : 포토리아

고대 인류가 살았던 확실한 증거

 

고대 인류의 DNA를 먼지에서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DNA가 먼지에 남아있는 경우는 식물이나 동물, 미생물 등의 DNA가 남은 경우보다 훨씬 드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간의 DNA는 발굴하고 있던 사람의 DNA와 섞일 가능성이 있어 딱 원하는 DNA만 채취 해내기가 어렵습니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먼저 네안데르탈인이 지냈던 것으로 알려진 동굴을 찾아갔습니다. 총 7곳의 동굴을 찾아갔고 각 동굴에서 퇴적물을 채취했습니다.

 

그 후 연구진은 채취한 퇴적물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추출한 이유는 세포핵 안의 DNA에 비해 세포가 더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서 말한대로 채취한 DNA와 발굴자의 DNA가 섞이는 것을 방지해야 했는데요. 고대 인류 DNA는 일반적으로 화학적 손상이 있다는 걸 감안해 화학적 손상을 입은 DNA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발견한 곳 중 하나인 스페인 ‘뼈의 동굴’ 출처 : J. Fortea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발견한 곳 중 하나인 스페인 ‘뼈의 동굴’ 출처 : J. Fortea

연구진은 7개의 동굴 중 4개의 동굴에서 채취한 DNA 복원에 성공했습니다. 복원된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는 총 9개였습니다. DNA 분석결과 9개 모두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니소바인의 DNA는 시베리아 남부 동굴에서 발굴한 퇴적물에서만 발견됐습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일종의 '친척' 인류입니다. 미국 UC리버사이드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기원>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 인류입니다. 유럽 대륙에서 약 30만 년 전부터 2만~3만 년 전까지 살았습니다. 

 

데니소바인은 현생 인류나 네안데르탈인과 아주 가까운 것으로 밝혀진 제3의 인류입니다. 러시아의 동쪽, 그러니까 몽골과의 경계인 알타이 산맥 근처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화석이 발견돼 세상에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현생 인류의 DNA에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두 고대 인류의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못 알아낸 것들

 

고대 인류가 살았다는 증거는 발견했지만 언제 살았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먼지에 붙은 DNA는 물에 흡수되고 토양에 스며들어 지층에 쌓이게 되는데요. 이를 이용한다면 그 유전자가 언제 먼지에 붙었는지 알아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토양에 스며든 DNA가 지층 깊은 곳에 퇴적될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그 DNA가 만들어진 시기를 파악하기 힘들어집니다.

 

연구진은 시베리아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동물의 DNA가 지층 상층부에서 많이 발견된 점을 감안해 고대 인류의 DNA도 지층 깊은 곳으로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연구진이 DNA를 복원하긴 했지만 그 DNA가 몸 어느 부분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체액에서 온 것인지 배설물에서 왔지 머리카락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죠. 슬론 박사는 “신체 어느 부분의 DNA든지 토양에서 고대 인류의 DNA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이전까지의 연구는 고대 인류가 살았다는 추측의 근거만 발견했을 뿐 유전학적으로 증명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한 동굴에서 고고학자들이 네안데를탈인이 만든 ‘도구’를 발견했지만 ‘뼈’나 ‘유전자’를 발견하진 못했죠.

고대 인류가 살던 동굴의 입구. 생각보다 멋지다. 출처 : Johannes Krause/Max Plan Institute
고대 인류가 살던 동굴의 입구. 생각보다 멋지다. 출처 : Johannes Krause/Max Plan Institute

 

가능성을 인정 받은 새 연구법

 

과학자들은 먼지에서 DNA를 찾는 방법에 대해 높히 평가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한 때 번창했던 지역이 지금은 물에 잠겼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해저 퇴적물을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또 캠브리지 대학의 고대환경학자 Mikkel Winther Pedersen 박사는 작년에 그린란드 토양의 DNA를 분석해 그린란드에서 4,000년 전에 북극고래를 사냥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토양은 고대의 환경을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Pedersen 박사는 “쓸모 없어 보이더라도 토양을 보존해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밟고 있는 흙 속에 역사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doi:10.1038/nature.2017.21910

 

이승아 수습 에디터(singavhihi@scientist.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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