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닥터? '기약 없는 꿈'
포스트닥터? '기약 없는 꿈'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09.27 11:24
  • 조회수 1557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제 : 기약 없는 꿈을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와 유예된 청춘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다. '스포츠카가 어울리는 나이에는 돈이 없어 스포츠카를 타지 못 하고, 스포츠카를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나이에는 스포츠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청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스포츠카만이 아니다. 사랑이 어울리는 나이에 사랑을 하지 못 하고, 결혼이 어울리는 나이에 결혼을 하지 못 하고, 여행이 어울리는 나이에 여행을 하지 못 한다. 그들이 마땅히 꿔야 할 꿈은 그들에겐 더 이상 마땅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청춘은 끊임없이 유예된다. 젊은이들은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다. 마치 그들이 산전수전을 겪은 불혹인 것처럼, 그들은 끊임없이 기다리고 기다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입시만이 선생님들이 가르치던 전부이던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연애는 대학에 가서 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대학에 오니 청춘의 열매를 따 먹는 순간은 잠시 뿐, 우리에게 잔소리를 할 선생님은 없지만 스스로의 그림자로부터 우리는 다시 "연애는 취직을 한 뒤에 해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어떻게든 애써 취직을 한 뒤에 결혼을 하려고 나서면, "돈이 어디 있다고 결혼이야?"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이런 끊임없는 유예는 연애와 결혼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매번 이런 식의 유예를 겪는다.

 

슈퍼 마리오

젊은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청춘이 그들로부터 유예되는 이유는 그들이 늘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케이드 게임의 주인공처럼, 젊은이들은 한 스테이지에서 다른 스테이지로 끊임없이 옮겨진다. 점점 갈수록 강해지는 스테이지 보스는 덤이다. 이전 스테이지에서 충분히 숙련되지 않았다면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에 올라오는 "Game Over"라는 글자를 봐야 한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게임은 물리치기만 하면 "피치 공주"와 꿈같은 엔딩을 볼 수 있는 끝판왕 "쿠파"가 존재하는 <슈퍼 마리오>와 같은 종류의 게임이 아니다. 그들의 게임은 그것보다는 끝없이 어려워지기만 하는 슈팅 게임 <갤러그>에 가깝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게임이 공주님을 구하면 행복하게 끝나는 게임이라고 믿지만, 그들이 바라는 해피엔딩은 기약 없는 약속일뿐이다.

 

오지 않는 고도

 

Waiting for Godot, directed by Macedonian theatre director Bore Angelovski (1965)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라는 두 사람이 나무 옆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을 다룬 연극이다. 연극에서는 그들이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고도가 그들을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구해줄 구세주인지, 아니면 적어도 그들에게 먹고 살 수 있게 일자리를 주는 고용주인지 우리는 연극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자신들도 고도를 왜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고도에 대한 희망을 잃으려는 순간마다 양치기 소년이 와서 고도가 곧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고도는 결국 오지 않는다.

 

오늘날 <고도를 기다리며>는 젊은 청춘들의 우화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고도를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우리의 고도가 무엇인지 모를 때도 있다. 오늘날 우리는 꿈보다는 생존에 내 삶을 바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꾸는 꿈이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내가 내 꿈의 주인이 아닌, 내 꿈이 나의 주인이 되어, 우리가 '포조에게 목줄에 매여 끌려가는 럭키'가 된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내 꿈이 주인이든 아니든, 내가 꿈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고도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도는 결코 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
(Some people are born on third base and go through life thinking they hit a triple)

 

 

미식축구 감독 베리 스위처의 말이다. 우리를 더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은 우리 옆에 있는 자들은 결국 고도를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온전한 내 능력에 의한 성공에 대한 환상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미디어와 SNS는 다른 누군가의 성공을 호화롭게 포장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성공은 그들의 능력 때문이었기보다는 그들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시대를 잘 타고났거나(전후의 역사적인 경제 호황기나 초창기 실리콘 밸리), 부모에게 상속받은 재산이나 사회적 영향력으로 부를 불렸거나(도널드 트럼프나 한국의 재벌 2세들) 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의해 그들은 성공한 이들로, 나머지 다수는 실패한 이들로 규정된다. 사실 그들은 고도를 만날 필요조차 없는데, 고도를 만난 척 우리에게 자신의 행운을 뽐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고도는 오지 않는다.

 

젊은 포스트닥터의 우화

 

스탠퍼드 대학 파노라마 (출처: Wikipedia)

과학계에는 '포스트닥터'라는 직업이 있다. 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박사가 정규직을 얻기 전까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비정규직으로 경력을 쌓는 것을 포스트닥터, 줄여서 포닥이라고 한다. 

 

사실 포닥이라는 기형적인 직업은 2차 대전 직후로부터 기인한다. 전쟁 동안 학자들에 대한 수요는 굉장히 많았지만, 전후가 되자 그 많던 학자들에게 모두 정규직 자리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박사 졸업과 정규직 연구원(또는 교수) 사이에 몇 년 간의 포닥이라는 유예 기간을 준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포닥은 프레쉬 박사의 수련 과정으로 살아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포스트닥터의 삶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며 길어야 2~3년 이상 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직업의 유동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포닥이라는 지식 보따리상은 학계 내 지식 교류의 가장 큰 원천이 된다. 아무리 학회에서 학자들끼리 아이디어를 교환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온 포닥을 고용하는 것만큼 집중적으로 지식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나는 내 꿈을 이루기엔 너무 가난한지도 모른다
(In the end, I may be too poor to achieve my career dreams)

 

스탠퍼드 대학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포닥인 펑 유안(Peng Yuan)의 말이다 [1]. 막 학위를 받은 젊은 박사의 수련과 지식 교류라는 이름 아래 젊은 학자들은 불안과 가난에 고통받아야 한다. 또한 그들은 불투명한 미래에도 불안을 느낀다.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포닥이 교수가 되는 비율은 3%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체감 상 느끼는 비율도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내가 예전 한국 대표로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회의'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2]. 어떤 미국인 포닥이 한 노벨상 수상자에게 "학교에서 보이는 학자들은 왜 항상 우울해 보일까요?"라고 질문했을 때 그 노벨상 수상자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잠시 후 그가 한 대답은 "테뉴어(종신 고용 보장)를 아직 받지 못 한 젊은 교수나 포닥들이 압박을 느낄 수는 있다. 주변을 보면 대학원생의 숫자와 교수의 숫자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대신 시야를 넓혀서 학교 밖을 봐라.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답이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실리콘 밸리에서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미국이라고 할지라도 기업 연구소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졸업하는 박사의 숫자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소수의 대기업 이외에 양질의 연구직 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한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앞으로도 당분간 젊은 학자들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학교 주변을 돌아다닐 것이다.

 

포닥의 삶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했을 때 벌어질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우화일지도 모른다. 젊은 박사의 수련과 지식 교류라는 이름으로 포닥 과정이 정당화되듯이, 시장 효율과 고용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이 정당화된다. 많은 포닥들이 결혼 적령기에 졸업을 하거나 포닥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젊은 학자들은 결혼을 미루고, 많은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의 불안정성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한다.

 

우리의 삶은 늘 유예되고, 또 유예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우리는 기다릴 뿐이다.

 

[1] Extraordinary and Poor, Science 30, 356, 6345, 1406 (2017). (한글 번역)
[2]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회의'는 매년 독일 린다우 섬에서 젊은 과학자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만나 의견을 교류하고 친분을 쌓는 회의이다. 한국에서는 과학기술한림원에서 매년 대표를 선발하여 린다우로 보낸다.
[3] 노벨상 수상자에 한정해서 보아도,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고, 더 이상 "젊은 천재"는 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Geniuses are getting older")

 

<외부 기고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물리학자 J(seokjaeyoo.nano@gmail.com)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사랑하는 예술과 과학 이야기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beyond-here/1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남도 보령시 큰오랏3길
  • 법인명 : 이웃집과학자 주식회사
  • 제호 : 이웃집과학자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병진
  • 등록번호 : 보령 바 00002
  • 등록일 : 2016-02-12
  • 발행일 : 2016-02-12
  • 발행인 : 김정환
  • 편집인 : 정병진
  • 이웃집과학자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6-2024 이웃집과학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ontact@scientist.town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