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사랑하고, 죄책감이 든다면
친구를 사랑하고, 죄책감이 든다면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10.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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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말하는 사랑과 우정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욱 훑어보면 가장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형태의 고민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남녀 간의 우정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예전에는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떤 계기로 인하여 상대방이 이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든지, 어느 날 뜬금없이 이성의 친구가 나에게 사랑을 고백해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등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경험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때로는 다소 상반된 주장들이 눈에 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우정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거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오랜 친구 관계로 남는 것이 가능하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아, 이들 사이에서 점잖게 타이르는 중립주의자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오로지 ‘케바케’일 뿐이라고 하는.

 

 

남녀 간 우정을 넘어서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답은 사실 당위와 가치관의 문제다. 그래도 되고 안 그래도 된다. 

누군가에게는 옳을 수도,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케바케’인 것도 맞다. 친구 사이에서 여보 당신 사이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 사이에서 ‘선’을 넘으려다 실패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들에 앞서,  

 

조금은 ‘원론적인’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이냐 우정이냐를 논하기 앞서, 우선 도대체 사랑이란 것이 무엇이고 우정은 또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과 우정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이라면 어떤 측면에서 그러하고, 만약 다른 것이라면 또 어떤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인가? 우정과 사랑은 얼마나 가깝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우리가 먼저 던져보았어야 하는 질문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사랑과 우정을 정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아마 이들에 대한 정의(definition)들을 수집한다면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인구수만큼의 정의들이 나올 수도 있을 터이다. 사랑과 우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심리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은 마찬가지다. 사랑 혹은 우정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면 동료 심리학자들로부터 가장 먼저 비판받게 될 만한 질문도 이들의 정의와 관련된 부분들이다. 가령 ‘지금 당신이 ‘사랑’이랍시고 측정하여 발표한 수치들이 과연 ‘사랑’이 맞느냐?’, ‘그 결과를 정녕 ‘우정’에 대한 것이라고,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가?’ 따위와 같은.

 

그러나 사랑과 우정을 연구하는 것이 어렵다고 마냥 주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사랑, 우정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져왔고 그 노력 끝에 그래도 심리학 분야에서는 사랑, 혹은 우정에 대한 제법 믿을 수 있을만한 연구 성과들을 계속 쌓아올 수 있었다. 심리학자가 아니면 누가 사랑, 우정에 대해 연구하겠느냐는 심리학자들의 그 ‘사명감’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사랑과 우정에 얽힌 비밀들을 풀어내는 데 나름의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왔다. 그 노력 덕분일지, 아마 심리학에서 도대체 사랑에 대해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 그 자세한 속사정은 몰라도 적어도 심리학자 스턴버그(sternberg)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A triangular theory of love)’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다시 사랑과 우정이 무엇인가 하는 맥락으로 돌아와서, 적어도 그간의 고민과 연구 끝에 심리학자들이 일단 합의하게 된 결론은 ‘사랑’과 ‘우정’이란 것이 서로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은 때로 우정이 되기도 하고, 우정은 때로 사랑이 되기도 한다. 사랑과 우정은 같은 듯하면서도 또 미세하게 다르지만 그 차이를 보면 단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뭐, 그 ‘종이 한 장’ 차이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일단 사랑과 우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랑과 우정을 ‘굳이’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일찍부터 사랑, 혹은 우정을 단일하게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해 버렸다.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 주장하는 사랑의 핵심적인 세 가지 요소는 ‘친밀감(intimacy), 열정(passion), 결정/헌신(decision/commitment)’인데, 스턴버그는 사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 요소의 복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요소들의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한 ‘사랑의 단면’들이 나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랑의 요소라고 제기된 것들이 ‘우정’에서도 능히 관찰되는 요소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세 가지 요소 가운데 ‘열정’이라는 것이 제거된다면 사랑과 우정의 차이는 한없이 미세해진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성적인 욕망, 독점에의 갈망 등으로 인해 열정이 커지고, 헌신이 증대되면 소위 말하는 ‘사랑’과 ‘우정’의 차이는 약간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정’이라 해서 열정이 없는가? 비록 성적 욕망은 일어나지 않지만 친구 사이에서 독점욕을 느끼는 경우는 없는가? 결론적으로 ‘사랑의 삼각형 이론’으로 우리는 ‘사랑’도, ‘우정’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이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심리학 이론을 살펴보자. 여기에서도 사랑과 우정은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사랑 태도 척도(love attitude scale)이라고 있는데, 이 척도에서 측정하고자 하는 사랑의 유형은 총 6가지이다. Eros, Ludus, Stroge, Mania, Pragma, Agape가 각각 그것인데 간단히 설명하면 순서대로 열정적 사랑, 유희적 사랑, 우정과 같은 사랑, 소유/의존적 사랑, 실용적 사랑, 박애적 사랑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여기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여섯 가지 유형의 조합으로 이뤄지며 각 유형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한 가지로, 우정에 가까운 특징들에 해당하는 Stroge가 버젓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유형들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Stroge가 두드러지는 이성 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그 ‘관계’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우정인가?

 

결국 사랑과 우정은 기껏해야 미세한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인지 모른다. 그리고 단지 ‘종이 한 장’에 가까운 미묘한 차이일 뿐이라면 얼마든지 ‘우정’이 ‘사랑’으로 뒤집힐 수 있다. 그 어떤 사소한 계기로도 손쉽게. 설사 내가 그렇게 아니길 빌었더라도. 그래서 ‘우정’이라는 명목 하에 출발한 이성 관계에서 어느덧 ‘사랑’이 싹트는 일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마음먹는다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급작스런 태세 전환이 아니다. 단지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딱 그 차이일 뿐. 사랑이 조금 더 깊은 사랑으로.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만약 당신이 한 때 친구라고 믿었던 누군가를 어느덧 이성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죄책감’이 뒤따라야만 할 일인가? 애써 사랑은 안 된다고, 우정으로 남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비난할 일인가? 그러니 다만 마음이 가는 것 그 자체를 비난하지는 말라. 물론 이후의 선택은 남아있겠으나.

 

- 참고 문헌

 

1. Hendrick, S. S. (1988). A generic measure of relationship satisfaction. Journal of Marriage and the Family, 93-98.
2. Sternberg, R. J. (1986). A triangular theory of love. Psychological review, 93(2), 119-135.

 

<외부 기고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용회 심리학 강사(yonghheo@gmail.com)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yonghheo/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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