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더라도 "나는 혼자가 아냐"
혼자 있더라도 "나는 혼자가 아냐"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11.17 13:12
  • 조회수 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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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근원

 

군대를 다녀오고 무엇이든 서투르기만 한 복학생이 되었을 때, 마음이 허하였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함이 없을 것 같았던, 그래서 군대를 가야 할 날이 다가오면서 누구보다 자주 보고 또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서로 잘 연락이 닿질 않았다. 군대를 다녀오게 되면 딱 ‘남을 사람’만 남는다더니, 틀린 말 하나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하고 각자 결혼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서로 바쁘고 무심해져 자연스레 편히 연락할 수 있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어가기 마련이라는 그런 말은 많이 들어오던 터다. 더 가까워지지도 못할 ‘애매한’ 사람들에게 애써 매달려보느니 차라리 내 곁에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잘해주는 것이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들에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유독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했다. 속은 공허하고, 하루하루가 쓸쓸해서 나 혼자 열심히 거기에 저항했던 것이다. 새로운 곳에 나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그렇게 메신저 내 친구들의 숫자를 늘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 있는지 줏대 따윈 없었다. 그저 제발 내 외로움을 좀 풀어주십사, 타인들에게 굽실대기 일쑤였을 뿐.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그러한 노력들이 어쩌면 모두 허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깊은 자조와 탄식이 밀려들었다. 한 때는 누구라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공허함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급속도로 피곤해졌고 재미가 없어졌다. 단순히 누군가를 계속 만난다고 하여 그놈의 공허함이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문득 실감하였다. 그럼으로 참으로 나는 허탈해했고, 다만 몇 달 간 누구도 만나지 않고 오직 집에만 틀어박혀 나 자신과만 친해질 기회를 갖는 데 골몰하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마치 내 안에 ‘나’가 존재하는 듯하여 그와 대화도 나누고 어려움도 토로하며 함께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새 ‘나’가 어떻게 생각하고, 또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보려 하였고 맞춰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나’에게 속으로 대화를 걸어보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으며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나’를 타이르거나 칭찬하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무슨 경험이었던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배웠던 것은 주체할 길이 없었던 외로움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어떤 깨달음이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할지 모르는, 그러나 내게는 무척이나 생소했던 진실이었다. 사람 한두 명쯤 내 곁에 당장 없더라도, 혼자 남아 있더라도 나는 죽지 않는구나. 살아갈 만 하구나. 일단은.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슴 아픈 짝사랑도 해봤고 때로는 1년이 넘도록 한 사람과 연애를 하기도 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해 온 오랜 친구들도 여전했고 새로이 알게 된 사람들도 하나같이 모두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외로움을 달랜다는 것은 내가 혼자가 되어버리기 이전에 주욱 해왔던, 그 허우적대던 행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 어떤 것이었다. 사실 외로움이란 단순히 ‘혼자됨’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혹은 혼자 있더라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이던가. 철저히 나 자신을 격리시키면서 깨달았던 것은, 나의 외로움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근원이었다.

 

핵심은 이것이었다. 혼자 있더라도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내 안에 ‘나’ 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말들은 다 무엇들인가? ‘잘했어, 내가 보기에 너는 해낼 줄 알았다니까’, ‘에휴, 네가 그럼 그렇지. 또 바보같이 실패했냐.’ 하고 나에게 ‘되묻는’ 까닭은 무엇인가? 말을 거는 ‘나’가 있고 또 말을 듣는 ‘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두 개의 ‘나’ 사이의 관계가 어떤가에 따라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거나, 또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친해지는 과정이 있었던 후에는 나의 외로움은 한결 덜하였다. 말을 거는 ‘나’와 말을 듣는 ‘나’는 운명 공동체요, 세상을 함께 헤쳐나갈 전우와 같은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가 있어서 나는 무척 든든했고 세상이 나에게 쓴소리를 해대도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외로울 때 나는 타인들에게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비루하게 구걸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당당하게 해 주었다. 

 

오직 그 사람만이 내 외로움을 모두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과 집착을 나는 버리게 되었다. 나는 이제 ‘두 종류의 외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타인이 나를 소외시킬 때 오는 외로움이 하나요, ‘나’가 나를 소외시킬 때 오는 외로움이 바로 나머지 한 가지다. 사람이 외롭지 않으려면, 이 두 개의 근원을 골고루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봐 주었으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그것은 왜일까? 다만 내가 한 때 가장 사랑했고, 동경했던 사람. 그러나 항상 나를 보면서도 그렇게 외로움에 힘겨워했던 그 사람에게 외로움에 관한 이 지극히 단순한 이치를, 당시 나는 말해볼 수 없었다. 그 때 알았더라면.

 

<외부 기고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용회 심리학 강사(yonghheo@gmail.com)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yonghheo/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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