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이유 있는' 역한 냄새
은행의 '이유 있는' 역한 냄새
  • 강지희
  • 승인 2018.11.12 12:45
  • 조회수 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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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가을이 지나고 차가운 겨울 날씨가 찾아왔지만, 아직도 가을의 상징 중 하나인 은행열매는 길에 넓게 깔린 채로 한 발짝 디딜 때마다 발 아래를 지뢰 찾기 게임 하듯 조심스럽게 관찰하게 합니다. 다행히 은행을 밟지 않고 지나가게 된다면 한시름 돌릴 수 있겠지만 은행을 밞는 순간 어쩔 수 없는 냄새의 헬게이트는 열리게 되지요. 이렇게 아침마다 지뢰 찾기 등교를 하다 보니 은행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에 대해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굳이 이렇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 지금처럼 가로수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대체 왜 이런 방향으로 진화를 하게 되었을까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발을 땅에 디디기가 좀 많이 힘들고 냄새가 좀 많이 날 뿐이죠. (출처: pixabay)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발을 땅에 디디기가 좀 많이 힘들고 냄새가 좀 많이 날 뿐이죠. 출처: pixabay

일단 은행나무에 대해 먼저 한 번 알아봅시다. 은행나무의 학명은 ginkgo biloba이고, 캠벨의 <생명과학>에 따르면 은행나무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분류 체계를 보면 식물계 은행나무문 은행나무강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 은행나무라는 엄청난 카테고리로 분류가 되어있지요.

 

문의 종류에 척추동물문, 속씨식물문 등이 같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은행나무가 아주 넒은 범위의 식물종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식물이라는 사실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은행나무는 Peter Del Tredici의 글, <Wake up and smell the ginkgos>에 따르면, 병충해에도 강하고 환경 적응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M. Handa외의 <Ginkgo landscapes. In Ginkgo bilobaa global treasure>라는 1997년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일본처럼 가로수의 11.5%가 은행나무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다른 어느 나무들보다 큰 비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Peter Del Tredici에 따르면 인위적으로 심긴 가로수가 아닌 자연에서 자생하는 은행나무 군락은 중국 남서부 충칭 시의 산 남쪽면 800m-1300m에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군락은 2000년대 중반에 DNA 분석을 통해 발견했지요. 덕분에 은행나무는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자생 군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은행나무는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가로수로 자주 보이는 식물이기에 딱히 멸종 위기 관리는 하지 않는 듯 하네요. (출처: https://www.iucnredlist.org/species/32353/9700472에서 캡처)
자생 군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은행나무는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가로수로 자주 보이는 식물이기에 딱히 멸종 위기 관리는 하지 않는 듯 하네요. 출처: iucnredlist.org

은행나무가 자생하기 어려운 이유는 은행나무의 씨앗을 퍼트리는 매개체의 부재와 기후 변화 때문입니다. Peter Crane의 책, <Ginkgo-the tree that time forget>에서 설명한 화석 기록을 보면 은행나무가 가장 번성했던 시절은 중생대 쥐라기 중기였고, 신생대 팔라오세에 지금처럼 한 종만 남을 때까지 계속 번성했었다고 합니다. 중생대 쥐라기는 현재보다 덥고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공룡들과 그 외 다양한 포유류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죠.

 

그러나 중생대가 지나고 운석이 떨어지고 기후가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춥게 바뀌면서 은행나무가 생존 가능한 지역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 열매를 먹고 소화시켜 퍼트리는 역할을 하는 매개 동물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멸종해서 씨앗 매개체가 없어진 은행나무는 지금처럼 인간의 도움이 없으면 자생하기 어려운 생물이 되어 버렸죠.

 

당시 씨앗 매개체 역할을 한 생물들은 공룡 혹은 포유류들이었다고 추정됩니다. 현재 살아남은 하이에나 같은 몇몇 포유류들이 썩은 고기 냄새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은행나무의 전략은 그 당시 만큼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중생대는 지금보다 따뜻하고 습했고, 거대한 공룡들이 지구를 지배했었습니다. 은행나무가 살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죠. (출처: pixabay)
중생대는 지금보다 따뜻하고 습했고, 거대한 공룡들이 지구를 지배했었습니다. 은행나무가 살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죠. 출처: pixabay

매개 동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은행 냄새의 원천은 육질층에 있는 butanoichexanoic 산들 때문입니다. (Parliament 1995). Butanoic acid의 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이 4개의 탄소를 가진 지방산입니다. 파마산 치즈, 썩은 냄새가 나는 버터(rancid butter)와 구토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butanoic acid 때문에 위에 언급한 것들에서는 그리 좋지 않은 냄새가 나지요.

 

Butanoic acid는 박테리아의 발효로 인해 만들어지며, 동물의 지방과 식물 기름이 형성될 때도 만들어집니다. 또한, hexanoic 산은 치즈 냄새가 나는 색깔 없는 기름 같은 액체로 다양한 동물의 지방과 기름에서 발견됩니다. 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이 두 종류의 산들은 은행 과육이 터지면 특유의 냄새를 뿜어내 매개 동물들을 끌어들여 종자를 먹게 하고, 동물들이 이동하면서 씨앗을 운반하도록 만들지요

 

Butanoic acid(위)와 hexanoic acid(아래)의 구조
Butanoic acid(위)와 hexanoic acid(아래)의 구조

 

은행 열매는 butanoic acid와 hexanoic acid를 포함하고 있어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출처: pixabay)
은행 열매는 butanoic acid와 hexanoic acid를 포함하고 있어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출처: pixabay

은행나무처럼 특이한 방식으로 종자를 퍼트려 번식을 하는 식물들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특이한 종자 분산 방법을 가진 식물에는 민들레가 있는데요. 봄만 되면 바람이 민들레 씨앗을 날려 주거나 아이들이 민들레를 꺾어 입으로 씨앗을 불어 날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요.

 

민들레 씨앗에 붙어 있는 잔털은 낙하산 역할을 해서 아주 가벼운 바람에도 민들레 씨앗을 멀리 날려 버립니다. 켐벨의 생물학 책을 참조하면 이 민들레 씨앗은 씨앗을 하나만 가지고 있는 열매에 가깝다고 하네요.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종자 중 가장 유명하지요! (출처: pixabay)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종자 중 가장 유명하지요! 출처: pixabay

바람으로 종자를 퍼트리는 식물은 민들레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켐벨의 생물학 책을 보면 열대아시아 덩굴성 호리병박은 씨앗에 날개가 달려서 바람이 불면 큰 원을 그리며 날아간다고 합니다. 또한, 단풍나무 씨앗은 헬리콥터 날개처럼 두 개의 날개가 원형으로 빙빙 돌아서 오랫동안 공중에서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단풍나무 씨앗의 회전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긴 종이조각을 세로로 반 정도 잘라서 양쪽으로 꺾어서 접고, 자르지 않은 쪽에 클립같은 조금 무거운 물체를 끼워서 바람이 부는 바깥에서 손을 놓으면 됩니다. 그러면 단풍나무 씨앗 모형이 빙빙 돌면서 땅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굴러다니는 회전초라는 식물도 있는데, 이 식물은 땅에 떨어진 채로 굴러다니면서 종자를 퍼트립니다. 지금처럼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흙길만 있던 시절에는 회전초의 전략이 잘 먹혔을 것 같네요.

 

사진 6시 방향에 있는 씨앗은 단풍나무 씨앗입니다. 헬리콥터 날개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바람이 많이 부는 가을에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모양이군요. (출처: pixabay)
사진 6시 방향에 있는 씨앗은 단풍나무 씨앗입니다. 헬리콥터 날개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바람이 많이 부는 가을에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모양이군요. 출처: pixabay

은행나무처럼 매개 동물에 의지하는 종자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바늘 덩굴은 날카롭고 못 같은 가시를 가지고 있어서 여기에 찔린 생물에게 상처를 냅니다. 만약 이 씨앗에 찔린다면 당연히 우리는 이 씨앗을 던져 버리려 할 거고, 씨앗은 만족스럽게 멀리멀리 날아가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터를 잡게 되겠죠. 참신한 전략인듯 합니다.

 

다람쥐 같은 생물을 겨냥한 열매들도 존재하는데요. 다람쥐는 도토리같은 식물 열매들을 땅을 파서 보관해 놓고 그 사실을 잊어버려 찾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종종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경우도 있겠지요. 어떻게 되든 다람쥐가 땅에 묻은 도토리를 다시 챙겨가지 못한다면 도토리는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도토리나무를 키우게 됩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묻어 놓은 곳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출처: pixabay)
다람쥐가 도토리를 묻어 놓은 곳을 잊으면 어떻게 될까요? 출처: pixabay

종자를 퍼트리는 방식 못지 않게 수분의 매개체 역시 매우 다양합니다. 역시 켐벨의 생물학 책을 참조하면 속씨 식물의 대부분은 동물을 통해 수분을 하는데, 나방이나 나비, 파리, 박쥐, 새 등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부분의 식물은 벌, 나방이나 나비 등 곤충에 의존해서 수분을 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수분 매개체인 꿀벌은 꿀과 꽃가루를 먹으면서 수분을 매개합니다. 꿀벌을 이용하는 꽃들은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와 노랗거나 파란 톤의 밝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방 혹은 나비에 의존하는 식물들은 달콤한 향기를 가지고 있고, 이들이 감지할 수 있는 화려한 색(나비) 혹은 흰색이나 노란색(나방) 꽃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꽃들은 예쁜 색과 향기로 사람들은 물론, 벌과 나비를 유혹하지요!! (출처: pixabay)
꽃들은 예쁜 색과 향기로 사람들은 물론, 벌과 나비를 유혹하지요!! (출처: pixabay)

라플레시아라는 꽃은 특이하게도 곤충을 통해 수분을 진행하지만 벌과 나비가 아닌 파리에 의존하는데요. 썩은 고기에 잘 꼬이는 파리를 유인하기 위해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붉은 꽃을 만들어 파리가 그 위에 알을 낳게 하고 그 과정에서 검정파리가 자신의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옮기게 만듭니다. 다행히도, 혹은 안타깝게도 파리 유충은 꽃잎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알에서 깨어나면 굶어죽게 되지요.

 

박쥐에 의해 수분되는 꽃들도 존재하는데요. 긴코박쥐는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의 용설란이나 선인장의 꿀과 꽃가루를 먹으면서 마치 꿀벌처럼 꽃가루를 옮깁니다. 꿀벌처럼 개체수가 상당히 많이 감소한 상태이기도 하지요.

 

새에 의해 수분되는 몇몇 꽃들은 후각기관이 발달하지 않은 새들에게는 향기가 소용없기에 향기를 발달시키지는 않았지만 새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꿀을 만들어 내야 했고, 새를 잘 끌어들이기 위해 크고 밝은 빨강이나 노랑색 꽃을 발달시켰습니다. 또한, 새의 부리에 맞는 모양으로 꽃잎을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벌새 같은 새들은 꿀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꽃에서 꿀을 가져가는 대신 수분을 도와주지요. (출처: pixabay)
벌새 같은 새들은 꿀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꽃에서 꿀을 가져가는 대신 수분을 도와주지요.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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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필진 강지희(rkdwlgml0306@naver.com)
서울대학교 응용생물화학부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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