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공학'으로 탄생한 커넥톰 로봇
'역공학'으로 탄생한 커넥톰 로봇
  • 이상진
  • 승인 2018.11.21 20:40
  • 조회수 6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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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5일 과학계의 지각 변동을 야기할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영국 로슬린연구소 이언 월머트 박사와 키스 캠벨 교수가 세계 최초로 체세포 핵을 이용한 포유류 복제에 성공한 것이죠. 

 

이언 월머트 박사(좌 ) 복제양 돌리(우). 출처:The Roslin Institute
이언 월머트 박사(좌 ) 복제양 돌리(우). 출처:The Roslin Institute

그들은 실험의 성공을 다음 해인 1997년 2월 22일에 공표합니다. 그리고 이날, 그 존재가 알려진 복제양 돌리는 인류에게 커다란 숙제를 안겨줍니다.

 

사실 복제된 포유동물은 돌리가 최초는 아니었습니다. 수정란을 나누어 생명을 복제하는 기술은 1950년대 개구리의 수정란을 이용한 복제연구를 효시로 하는데요. 1983년에는 수정란 복제기술로 미국의 일멘스 박사가 쥐의 수정란 세포를 이용해 마침내 최초의 포유류를 복제하는 데 성공합니다.

 

돌리가 특별한 것은 최초로 '성체'인 '포유류'의 '체세포'를 통해 복제에 성공한 동물이라는 점입니다. 인류는 이로써 동물복제의 본격적인 출발선에 서는 동시에, 인간복제의 가능성과 그로부터 예상되는 여러 윤리적 문제에 맞닥뜨립니다. 

 

이에 유네스코는 복제기술 이용에 대한 윤리협약을 제정했고, 미국 등도 관련 규제를 마련하게 됩니다.

 

2012년 우수 인명구조견 백두의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태어난 강아지들. 출처:국립축산과학원
2012년 우수 인명구조견 백두의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태어난 강아지들. 출처: 국립축산과학원

복제양 돌리의 탄생 이후로 체세포를 통한 복제연구에 세계적인 붐이 일었고, 소와 양, 개 등의 복제에 성공합니다. 이런 시끌벅적한 복제연구 흐름의 구석진 한 쪽에서 또 다른 일군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복제'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그 내용이 실생활과 다소 동떨어져 대중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우려 섞인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되었던 그들은 착착 연구를 진행해나갔고 씨줄과 날줄로 복잡하게 이어진 동물의 신경세포들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예쁜꼬마선충. 출처:fotolia
예쁜꼬마선충. 출처:fotolia

예쁜꼬마선충은 흙 속의 박테리아를 먹고 사는 두께 0.1밀리미터, 길이 1밀리미터 정도의 작은 동물인데요. 1986년 존 화이트 박사가 '예쁜꼬마선충'의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회로도(커넥톰, connectome)를 알아냅니다. 

 

이로서 예쁜꼬마선충은 다세포 생물 가운데 가장 먼저 DNA 염기서열이 분석된 동시에, 인간이 모든 뉴런 정보를 알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죠.

 

위와 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2013년 미국의 벤처기업인 오픈웜은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했고요. 그 다음해에는 해당 시뮬레이션을 로봇에 장착하기도 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로봇을 만드는 과정은 대표적인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의 사례인데요. 이론과 원리를 통해 장치를 작동하는 '공학'의 과정과는 반대로, 이론과 원리에 대해 알지 못해도 이미 어떤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그 시스템이 움직이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해 장치를 움직이는 걸 역공학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과거 방송콘텐츠 시장확대를 위해 노력했던 중국 방송사들이 우리나라나 일본 등 콘텐츠 강국의 기획을 그대로 따라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요. 왜 재밌는지, 왜 감동적인지 그 메커니즘을 잘 알지 못해도 그대로 따라서 비슷하게 만들기만 하면 시청률 높은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바로 '콘텐츠의 역공학'인 셈이죠.

 

이처럼 '역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장치의 작동에 대해 그 메커니즘을 완벽히 파악하기 전까지, 우리는 무지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그것을 만든 사람도 파악할 수 없는 일종의 블랙박스(암흑상자)라 불리는 무지의 공간이 생겨나게 됩니다. 예쁜꼬마선충 로봇도 마찬가지고요.

 

사람의 유전자 염기서열. 출처:fotolia
사람의 유전자 염기서열. 출처: fotolia

문제는 인류가 현재까지 세포가 959개, 신경세포가 302개뿐인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을 알고 있을 뿐이지만, 소와 돼지, 인간의 커넥톰을 알아낸 뒤 이를 시뮬레이션으로 구성한다면 마치 '복제인간'을 둘러싼 여러 윤리적 문제들이 자연히 따라온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해당 시뮬레이션을 '로봇'에 장착한다면, 문제가 어떻게 될까요.

 

현재 과학계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데요. 우선 '생명'을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복제된 '예쁜꼬마선충 로봇'을 '생명'으로 볼 수 있을까요? 만약 예쁜꼬마선충 로봇을 '생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복제의 윤리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중무장한 중동 군인. 출처:fotolia
중무장한 중동 군인. 출처:fotolia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위험성'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는 없습니다. 가령 '오사마 빈 라덴'과 '똑같은 커넥톰 로봇'이 로봇이나 그에 동조하는 사람을 선동해 테러를 일삼을 수도 있으니까요.

 

과학계와 사회가 커넥톰 복제문제에 대해 비교적 경각심이 얕은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컴퓨터 알고리즘 과정 정도로 커넥톰 복제를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알고리즘, 그리고 컴퓨터 언어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인 프로그램은 그것을 만든 인간의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반면 커넥톰 복제 시뮬레이션과 로봇은 '알 수 없는 공간'인 블랙박스(암흑상자) 공간이 생겨 그 스스로를 끝없이 창조해나가죠.  

 

열자마자 재앙이 툭툭 튀어나왔던 판도라의 상자. 그 끝엔 희망이 있었다. 출처:fotolia
열자마자 재앙이 툭툭 튀어나왔던 판도라의 상자. 그 끝엔 희망이 있었다. 출처: fotolia

물론 커넥톰 복제에 우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돼지의 장기가 체세포 복제를 통해 만들어지는 등 복제동물의 효용성이 있듯, 기존 알고리즘에 갇히지 않고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기능하는 커넥톰 복제 또한 인류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은 '커넥톰 복제' 같은데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참고자료##

 

김재인,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서울:동아시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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