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 연구단이 이끄는 코사인-100 공동연구 현렵단이 암흑물질을 둘러싼 오랜 논란을 검증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암흑물질 검출 실험 설비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는데요.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알려져왔던 윔프(WIMP)입자가 남긴 유일한 흔적을 반박할 데이터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참고로 코사인-100 국제공동협력단은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코사인 실험을 운영하기 위해 구성된 국제공동연구진입니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26.8%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그 존재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여러 관측 결과를 토대로 중력과 약력으로 상호작용하고, 질량이 무거우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입자가 있을 것으로 이론적으로 예측할 뿐입니다.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라는 뜻의 윔프(WIMP)는 그 특징이 암흑물질의 조건에 부합해 유력 후보로 꼽힙니다.
암흑물질의 발견이 곧 노벨상 수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학계의 관심이 높지만, 지금까지 암흑물질의 흔적이 발견된 건 이탈리아 그랑사소 입자물리연구소의 다마(DAMA) 실험이 유일합니다. 1998년 첫 실험 이후 다마 팀은 20년 동안 암흑물질 윔프의 신호를 포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98년 계절별로 변하는 신호를 발견했고, 이를 낮은 질량의 윔프(WIMP)라고 주장했는데요. 지구가 공전 궤도를 지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암흑물질 지역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신호가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연구팀에 의해 검증된 적이 없어 다마 팀이 관측한 신호가 정말 암흑물질인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강원도 양양 지하 700m 깊이의 실험실에서 2016년부터 다마 팀의 실험을 검증하기 위한 코사인-100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코사인-100실험이란 고순도의 결정에 암흑물질이 부딪혔을 때 내는 빛을 토대로 암흑물질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대부분의 윔프 검출 실험은 지구로 날아온 윔프 입자와 검출기 내 결정의 충돌과정에서 흔적을 찾도록 설계됩니다. 초속 수백 km로 날아온 윔프가 원자핵과 충돌하면 원자핵은 이 과정에서 광자를 방출하게 되는데 이 신호를 검출하는 겁니다.
하지만 고순도 결정 제작 기술과 높은 차폐 성능 구현이 어려워 그간 세계 유수의 연구팀이 다마 실험의 완벽 재현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은 다마 팀과 동일한 결정을 이용하는 검출기를 독자 개발해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다마 팀에 비해 안정적인 검출 환경도 조성됐습니다. 고체 차폐체에 액체 섬광체를 추가한 이중 차폐 설계를 도입해 외부의 잡신호를 줄이는 동시에 결정 내부에서 만들어진 방사능도 줄였습니다. 또 기계학습을 접목해 인공지능으로 잡신호를 골라낼 수 있는 기술도 추가했습니다.
이번 논문은 코사인-100 검출기가 초기 59.5일 간(2016.10.20~12.29)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쓰였습니다. 연구진은 코사인-100실험의 초기 실험에서 확보한 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다마 팀이 발견한 신호가 암흑물질에 기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다마 팀이 포착한 신호가 암흑물질이 맞다면 이 기간 동안 1200번의 신호가 포착돼야 했지만, 연구단의 검출기에는 이런 신호가 검출되지 않은 건데요.
이현수 부연구단장은 "암흑물질의 발견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지식에 영향을 줄 놀라운 사건"이라며 "다마 실험을 완벽히 재현할 검출기를 자체 개발해서 독립적인 실험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에 학계가 주목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연구진은 향후 추가 데이터를 확보해 5년 내 다마 팀의 주장을 완벽히 검증 혹은 반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 성과는 <네이처(Nature)>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