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다 기억나는 '과잉기억증후군' 실재
삶이 다 기억나는 '과잉기억증후군' 실재
  • 이상진
  • 승인 2019.01.10 06:00
  • 조회수 9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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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풍경이나, 냄새 등에 기시감은 드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처:pixabay
풍경이나, 냄새로 인한 기시감은 드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처: pixabay

길을 걷다가, 아니면 낯선 곳을 방문했을 때 가끔, 유년 시절 맡았던 것 같은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 어디서 맡은 향기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꽤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한다면 망각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모두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

 

1965년 태어난 미국인 질 프라이스는 자신의 삶을 거의 대부분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기억은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요. 

 

태어난 이후 8세까지의 기억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이고, 8~13세까지는 대부분의 날들을 기억한다고 해요. 기억이 나지 않는 일화들도 몇 초 정도 생각하면 기억이 난답니다. 14세 이후부터는 모든 일화들을 기억하고요.

 

자신의 삶을 모두 기억한다면, 행복할까요? 출처:pixabay
자신의 삶을 모두 기억한다면..? 출처: pixabay

얼핏 들으면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그녀의 삶이 대단하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짊어져야 할 과거의 버거운 짐들에 지쳤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왜 자신에게만 이런 통제불능의 뛰어난 기억력이 주어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제임스 맥거프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해요. 

 

제임스 맥거프 교수는 기억에 관한 연구의 권위자였는데요. 프라이스가 보낸 메일을 받고 친절하게도 그녀와 만나자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연구실에서 프라이스를 만난 맥거프 교수는 사건·사고를 모아놓은 두꺼운 책을 한 권 내놓습니다. 그리고 맥거프 교수는 프라이스에게 1979년 11월 5일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데요. 그날은 이란 학생들이 미국 대사관에 난입한 사건이 있던 날이었죠.

 

프라이스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그날 하루의 일과를 말합니다. 그녀는 11월 5일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지만, 그 전날인 11월 4일에는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난입했던 사건이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맥거프 교수는 책을 보여주며 그녀가 틀렸다고 했지만, 나중에 다른 자료들로 확인한 결과 해당 사건은 11월 4일에 일어난 게 맞았습니다. 

 

 

맥거프 교수는 지난 2006년 학술지 <Neurocase>에 프라이스의 사례 들면서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냅니다.

 

예쁜꼬마선충으로 밝혀낸 망각에 대한 새로운 사실   

 

최근까지 망각에 대한 연구는 '부식 모형'과 '간섭 모형'이 주를 이뤘습니다. '부식 모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간의 몸처럼 기억도 세월에 따라 점점 흐려져 간다는 가설입니다. '간섭 모형'은 기억에는 용량이 정해져 있어 여러 기억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경쟁에서 도태된 기억은 사라진다는 가설인데요.

 

지난 2014년 망각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학술지 <Cell>의 2014년 3월 13일자에는 망각의 과정을 앞선 두 가지 가설과 다른 관점에서 규명한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스위스 바젤대학의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으로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고 해요. 예쁜꼬마선충은 1965년 실험동물모델로 처음 소개된 뒤, 신경학과 유전학, 발생학 등에서 실험모델로 자주 사용되는 동물입니다.

 

다양한 연구에 도움을 주는 예쁜꼬마선충. 출처:fotolia
다양한 연구에 도움을 주는 예쁜꼬마선충. 출처: fotolia

연구팀은 무사시(MSI-1)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예쁜꼬마선충은 그렇지 않은 선충에 비해 기억력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무사시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과정'이 망각에 관여한다는 것이죠. 이는 기억이 시간이나 용량에 따라 지워져가는 '수동적인 과정'을 통해 '망각'이 일어난다는 '부식 모형'이나 '간섭 모형'과는 다른 설명인데요. 

 

인간에게도 선충의 무사시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존재하는데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잉기억증후군'은 이런 '망각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참고자료##


강석기, <사이언스칵테일>, 서울:MID, 2015.

메디컬티비medicaltv, 잊을 수 없는 기억의 고통, 과잉기억증후군, YouTube, 2018.

Parker, E.S., Cahill, L. and McGaugh, J.L.. A case of unusual autobiographical remembering. Neurocase, 2006, 12, 35-49.

Nils Hadziselimovic, Vanja Vukojevic, Fabian Peter, Annette Milnik, Matthias Fastenrath, Bank Gabor Fenyves, Petra Hieber, Philippe Demougin, Christian Vogler, Dominique J.-F. de Quervain, Andreas Papassotiropoulos, Attila Stetak, Forgetting Is Regulated via Musashi-Mediated Translational Control of the Arp2/3 Complex, Cell, 2014, 156, 1153-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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