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님들, 혹시 측생동물을 아시나요? 문자 그대로 '동물 옆에 있는' 동물이라는 건데요. 진화 단계 초기에 다른 동물들과 분리된 것으로 보입니다. 측생동물은 고생대부터 존재한 원시적인 동물입니다. 다세포동물 중 구조가 가장 원시적이어서 원생동물도 후생동물도 아닌 측생동물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바다 속 바위나 자갈과 진흙 바닥 혹은 조개나 멍게와 같은 생물에 붙어 사는데요. 움직이지도 않고 소화기관과 감각기관도 없어서 얼핏 식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이한 화합물 만들어
그런데 측생동물이 신기한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알려졌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C샌디에이고)와 미국 유타주립대 공동 연구진은 측생동물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특정 화합물을 생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습니다.
이들이 만드는 화합물은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라는 물질입니다. 일회용품에 주로 사용되는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는 벤젠고리 2개 사이에 산소가 치환된 화합물인데요. 인류에게 유해한 화합물로 꼽힙니다. 토양과 퇴적물에서 분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6개월에 달합니다. 잘 분해되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사람이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에 장기간 노출되면 간을 손상시키고 다양한 암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 내분비 계통의 신경 행동 장애까지 유발할 수 있는 유독한 물질입니다. 때문에 전 세계는 스톡홀름 협약을 통해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 사용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던 유해 화합물을 오래 전부터 측생동물이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원리로 만들까
깊은 바다 속에 서식하는 측생동물을 채집해 이들의 유전자를 조사했더니, 측생동물이 직접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를 스스로 생성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측생동물이 '남세균'과 만났을 때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가 생성됐습니다.
남세균은 녹색 색소인 엽록소를 가지고 광합성 하는 세균입니다. 과학자들은 남세균 유전자를 추출해 측생동물 유전자와 접목하는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측생동물이 남세균과 만났을 때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증명해냈습니다. 남세균 유전자와 측생동물 유전자를 혼합배양하자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가 나왔지만, 남세균 유전자와 측생동물 유전자를 각각 배양했을때는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가 생성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샤워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 사용하는 스펀지도 알고 보면 측생동물의 구조를 모방해 만들었습니다. 측생동물은 팔과 다리 같은 기관은 없지만 대신 아주 미세한 가시들이 몸속에 있는데, 스펀지도 이런 구조에 착안해 제작한 겁니다. 측생동물의 가시가 바닷속에서 측생동물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스펀지의 가시는 오물을 닦아낸다는 점이 차이점이지요.
이렇게 원시적인 구조의 측생동물이 현대인이 화학적으로 만든 물질을 이미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대목인데요. 과학자들은 측생동물이 화합물을 방출한 결과가 무엇을 초래하는지 밝혀내기 위해 추가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Vinayak Agarwal et al. Metagenomic discovery of polybrominated diphenyl ether biosynthesis by marine sponges. Nature Chemical Bi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