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서 살아남은 어벤져스 멤버들은 최강 빌런 '타노스(Thanos)'를 물리치는 치열한 전투를 예고합니다.
타노스는 막강한 힘과 무서운 가치관을 가진 악역입니다. 언제나 '균형'을 중시하며 우주의 균형을 위해 우주 인구의 절반을 죽여야한다고 생각하죠. 이런 가치관 덕분에(?) 타노스는 마블 시리즈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벤져스의 활약은 그의 무서운 생각과 능력 덕분에 더욱 빛나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타노스와 유사한 가치관을 가진 악역이 또 다른 영화에 있습니다. 바로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발렌타인인데요. 발렌타인도 필요한 인간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을 죽여 인구 수를 줄이자는 위험한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영화에서 나온 악역들이지만 타노스와 발렌타인은 균형을 위해 인류의 일부를 없애야 한다는 위험한 가치관을 가진 공통점을 나타냅니다. 타노스와 발렌타인은 왜 인구 수를 줄이려고 하는 걸까요?
인구론에 기반한 '위험한 상상'
타노스와 발렌타인의 가치관은 공통적으로 '인구론'을 전제로 합니다. 인구론은 영국의 고전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가 창시한 이론입니다. 맬서스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고 세론이 분분하여 인심이 심하게 동요되던 청년기를 보냈는데요. 맬서스는 그 시대의 현실 문제에 입각해 인구론을 주장했습니다.
맬서스는 인간의 생식력 즉 인구증가력과 인간을 부양하기 위한 식량을 생산하는 토지의 생산력을 대립시켰습니다. 맬서스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기하급수란 앞의 항에 일정한 수를 곱한 항으로 이루어지는 급수를 말하며 '등비급수'라고도 부릅니다. 산술급수는 앞의 일정한 수를 더한 항으로 이루어지는 급수를 말하며 '등차급수'라고도 부릅니다. 기하급수가 곱해서 증가한다면 산술급수는 더해서 증가하는 식이죠.
맬서스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여기서 빈곤, 기근, 악덕이 나타난다고 봤습니다. 맬서스는 인구의 원리가 존재하는 한 사회에서 빈곤과 죄악을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이를 없애거나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도덕적 억제'를 실시해 무모한 인구 증가를 막아야 한다고 봤습니다. 맬서스의 '도덕적 억제'란 자녀를 부양하는 데 충분한 경제력이 생기기 전까지 결혼을 연기하고 성적으로 순결한 생활을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19세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도 포함됐는데요. 다윈은 인구론을 바탕으로 "가장 치열한 경쟁은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위험에 처해있는 동일 종에 속하는 개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윈은 이 주장을 바탕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자연선택설>을 주창했습니다.
인구론의 '실패와 부활'
하지만 20세기에 인구론은 낡은 이론으로 치부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질소고정법'을 발명해 살아있는 비료를 만들었기 때문이었죠. 질소 비료를 포함해 종자 개량과 대량 기계화 경작 등이 나타나면서 식량혁명이 일어나 식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피임법이었습니다. 피임법이 개발되면서 성욕을 유지하면서도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법을 인간이 터득합니다.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두 전제가 어긋나면서 인구론은 폐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인구론은 '신맬서스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 따르면 인구 증가와 급속한 공업화 때문에 지구의 식량과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파괴되어 인류는 100년 안에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과거 식량 부족을 석유, 에너지 등의 천연자원의 고갈론으로 확대시킨 것이죠.
<어벤저스>의 악역 타노스와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악역 발렌타인은 '신맬서스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다만 인구론은 도덕적 억제로 인구를 조절하라고 했지만 타노스와 발렌타인은 무력으로 인구를 조절하려 했다는 차이가 있죠.
발렌타인은 인구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구축했는데요. 바로 '가이아 이론'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최초의 신이자 대지의 여신
가이아 이론은 그리스 로마 신화 최초의 신이자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에서 따온 이론입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이론입니다. 사람을 포함해 각종 동식물, 기후, 토양 등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지구라는 생명체에 살아간다고 하죠.
가이아 이론은 1978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최초로 주장했습니다. 생명 자체를 정의하는 주된 특징 중 하나는 환경적 교란에 반응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인데요. 러브록을 필두로 한 과학자들은 지구가 이 생명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죠. 러브록은 지구 스스로가 정화 작용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이아 이론은 생명에 유리한 기후 조건과 영양 주기에 대한 조건이 수백만 년 또는 수십억년으로 비교적 일정하였다는 관찰에 근거를 둡니다. 지구는 아주 옛날부터 지구 온난화 사이에 빙하기를 거쳤는데요. 어떤 시기라 할지라도 생명이 완벽히 살 수 없는 범주로부터 크게 벗어난 적은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러브록과 그의 지지자들은 생명 자체는 큰 지질 및 대가학적 과정과 더불어 뭉뚱그려서 '지구생리학'이라는 항상성적인 되먹임 과정으로 이 유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이아 이론 신봉자와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되먹임 과정의 예로 플랑크톤과 구름을 들었습니다. 연구자들은 구름의 형성은 2-메틸황화물(DMS)이라는 대기 가스로 촉발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DMS는 해양 식물성 플랑크톤에 있는 삼투질의 분해산물인데요.
지구의 기후가 온난화에 접어들면 플랑크톤의 생장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DMS의 생산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더 많은 구름이 형성돼 태양을 가립니다. 태양이 가려져서 대기가 냉각되는데요. 그래서 행성의 대기 온도가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을 방지한다고 합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기 온도 증가 → 식물성 플랑크톤으로부터 더 많은 DMS방출 → 더 많은 구름 형성 →
지구에 태양광 도달 감소 → 대기 냉각
가이아 이론에서 지구 온난화나 환경 파괴는 지구에 탈이 난 것으로 그대로 방치하면 지구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킹스맨>의 발렌타인은 지구가 탈이 난 이유를 '인류'라고 생각하는데요. 발렌타인은 인류를 지구의 바이러스로 취급해 필요한 사람들만 지하세계로 빼돌리고 나머지는 서로 싸워서 죽이도록 유도합니다.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감상하는 게 제일 무난합니다. 어벤져스에 부쩍 관심이 생긴 분들이라면 여기에 '인구론'과 '가이아 이론'까지 접목해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 자료##
- 박병률 <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
- 김형근 <1% 영어로 99% 과학을 상상하다>
- Sherwood <동물생리학>
- 니콜라 찰턴 & 메러디스 맥아들 <과학자 갤러리>
- 에드워드 J. 라슨 <진화의 역사>
- 장회익, 최종덕 <이분법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