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춘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릴 때 사람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때 조건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운전석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예시를 그저 농담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는데요. 왜냐하면 정말로 사람들은 자동차에 안전장치가 늘어날수록 운전습관이 거칠어지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여러 가지 심리 현상에 영향을 받는 까닭인데요.
인간은 자신이 안전한 환경에 있다고 인식할수록 더 대범하게 위험을 즐기는 심리적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리스크보상(Risk Compensation)'이라고 하는데요. 이 리스크보상 때문에 자동차 안전장치가 오히려 교통사고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K. 미하엘 아쉔브레너 등 독일의 심리학자들은 자동차의 잠김방지제동시스템(ABS)을 자동차에 도입하던 1980년대 독일 뮌헨의 택시 기사들을 대상으로 운전습관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ABS는 자동차가 급제동할 때 바퀴가 감기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특수한 브레이크입니다.
독일 심리학자들의 관찰 결과 평소에 난폭한 운전습관을 가진 사람은 ABS가 도입된 이후에 더 거칠게 운전을 했다고 해요. 이는 수치로도 증명이 되는데요. ABS가 도입된 지 3년만에 ABS를 장착한 택시의 교통사고율이 치솟았습니다. ABS 도입으로 야기된 이러한 변화는 독일뿐만 아니라 캐니다와 덴마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는데요.
연구팀은 이에 대해 택시운전자들이 ABS 도입으로 자신이 더 안전하게 됐다는 믿음이 운전자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는 더 거진 운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ABS를 장착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정차 시 앞차에 자신의 차를 더욱 바싹 붙이는 위험한 운전을 벌였습니다. 자신의 안전뿐만 아니라 타인이 더 안전하다고 느낄 때도 운전 방식이 더 거칠어진 건데요.
비슷한 결과로 자전가를 탄 사람이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으면 자동차 운전자는 헬멧이 없는 사람보다 평균 8.5cm 더 가깝게 자전거 옆을 지나간다고 합니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헬멧을 쓴 자전거 운전자가 헬멧이 없는 운전자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바싹 붙은 위험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남성 자전거 운전자에게 긴 머리카락의 가발을 착용하게 하자 자동차 운전자가 자전거와 더 간격을 벌린 채 운전했다는 것인데요. 연구팀은 이를 통해 자동차 운전자가 여성이 남성보다 자전거를 덜 안전하게 운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분석했습니다.
##참고자료##
- 폴커 키츠, <스마트한 심리학 사용법>, 김희상, 갤리온,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