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731 부대가 사람에게 자행한 실험들
日731 부대가 사람에게 자행한 실험들
  • 강지희
  • 승인 2019.07.20 10:50
  • 조회수 3118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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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출처: Wikimedia Commons
731부대 전경. 출처: Wikimedia Commons

일본은 1932년부터 2차 세계대전 말까지 만주 일대에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중에서 731 부대는 제국주의 일본의 생화학 전쟁을 수행한 부대입니다. 731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실험을 자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731은 중국의 핑팡, 한첸, 창천 및 기타 지역에서 만주, 소련 연방, 미합중국, 영국, 호주 등 타국 출신 포로들에게도 실험을 했습니다.

 

731 부대 구성

 

731 부대는 총무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교육부, 자제부, 진료부로 구성됐습니다. 총무부는 '마루타'의 관리와 해부를 담당했습니다. 제1부는 세균 연구, 제2부는 실전 연구, 제3부는 세균배양기와 도기폭탄 제조, 제4부는 세균 제조를 담당했습니다. 진료부는 부대원의 진료와 마루타의 인체 실험을 진행합니다. 이 밖에도 4개의 지부와 1개의 실험장, 직속 항공부대를 운영했으며 총 규모는 3,000여 명이었습니다.

이시이 시로.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시이 시로. 출처: Wikimedia Commons

731를 이야기할 때 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시이 시로는 교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육군 군의를 거쳐 1940년 8월부터 관동군 방역급수부장에 올랐습니다. 공금 횡령으로 육군 군의 소장에서 제1군 군부장으로 좌천되기도 했지만 육군 군의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731부대로 복귀했습니다.

 

마루타와 특이급

 

마루타는 일본어로 '통나무'를 의미합니다. 731에서는 인체 실험의 피험자를 마루타라고 불렀습니다. 마루타는 주로 헌병대에 잡힌 반만주 항일 운동가였으며 중국인 외에도 조선, 러시아인이 다수였습니다.

중국 영화 '마루타'의 포스터.
중국 영화 '마루타'의 포스터.

실험 대상자들을 연행할 때 중국 핑팡으로 연행하는 특별 수송은 '특이급'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실험 대상자들을 조달하기 위해 군이 특별히 정한 이름이었다고 하는데요. 731 일원 중 한 명이었던 가와시마 기요시 세균제조부장은 1949년에 진행된 하바롭스크 재판에서 특설 감옥에는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수용됐다고 인정했습니다. 특이급으로는 적어도 8,000여 명이 이송돼 실험 대상이 됐으며 한 명도 살아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시이 시로를 위시한 731 부대는 천황의 칙령으로 창설된 유일한 부대라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곡된 자부심은 생화학 무기를 만들기 위한 끔찍한 인체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무 죄 의식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험 대상자에게 31종류의 실험을 자행합니다.

 

1. 세균 감염 실험

실험을 하고 있는 731부대의 의사. 출처: 유튜브/The Front
실험을 하고 있는 731부대의 의사. 출처: 유튜브/The Front

731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각종 세균을 주사하거나 만두에 섞어 먹이고 그 독성을 실험했습니다. 실험 대상자를 일부러 이질에 감염시키기도 했으며 파상풍균을 주입해 관찰했습니다. 세균 마스크를 씌운 사람과 안 씌운 사람들을 별도의 말뚝에 세운 다음 청산가스를 뿌려대며 유심히 그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특히 731은 페스트균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페스트균은 '흑사병'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14세기 지중해 연안, 프랑스, 독일, 영국, 북유럽으로 확산해 4년 만에 유럽 인구 1/3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를 악랄한 살육전에 적용하려 한 731은 '페스트 벼룩'을 개발합니다. 균 자체를 그대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매개 동물인 벼룩을 페스트균에 감염시켜 완충물에 섞거나 도자기 폭탄에 담아 뿌렸다고 하는군요. 실제 중국에 살포한 세균의 상당수는 이 페스트균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파견을 나왔던 노버트 H. 펠은 1947년 6월 30일 본국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벼룩 번식법과 쥐를 통해 벼룩을 감염시키는 방법을 방대하게 연구했다.

페스트 벼룩은 최선의 조건 하에서는 약 30일 생존하는데

그동안 감염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1㎡당 벼룩 20마리가 있는 방에서 실험 대상자를 자유롭게 풀어두는 실험을 했는데

10명 중 6명이 감염되고 4명이 사망했다.

탄저균 실험도 자행했다고 합니다. 노버트 H. 펠은 탄저균 폭탄 실험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사람을 묶어 헬멧을 씌우고 갑옷을 입혔다.

지상에서 고정해 폭발하는 것, 비행기에서 투하된 시한 기폭 장치가 설치된 것 등

각종 폭탄으로 실험했다.

다른 폭탄을 사용한 야외 실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10명 중 6명의 혈액에서 균이 발견됐고 이 중 4명은 호흡기로부터 감염됐다고 추정했다.

4명 모두 사망했다.

이 4명과 일제히 폭발한 9개 폭탄과의 거리는 불과 26m였다

731 부대는 세균 폭탄을 투하하거나 세균을 살포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 10월 4일에 중국 취현에 투하한 페스트탄은 1,5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으며 1940년 11월 4일 중국 창더에는 페스트 벼룩을 살포했는데요. 주변 마을까지 페스트가 확산해 7,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본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41년 713은 중국 창태에서 콜레라균을 이용해 공격을 했는데요. 이 바람에 일본군 병사 1,700여 명까지 목숨을 잃었습니다.

 

2. 극한 환경 노출

731부대의 동상 실험. 출처: Wikimedia Commons
731 부대의 동상 실험. 출처: Wikimedia Commons

731 부대는 진공, 기아, 화학가스, 화력, 냉동 등 극한 상황에 따른 인체의 반응과 생존력을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영하 50도의 방에 실험 대상자들을 넣어 죽을 때까지 방치하며 관찰하는 식입니다. 1938년부터 1945년 패전까지 731 부대에 복무한 요시무라 히사토는 동상을 연구하기 위해 피험자들의 손발을 일부러 얼려 피부 온도와 손가락의 용적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전쟁 이후 요시무라는 이 연구 결과를 영어 논문으로 다시 발표했는데요. 실험 대상 중에는 생후 3일 된 신생아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시무라는 영어 논문에 피험자들의 손발을 얼렸음을 시사하는 지표는 싣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상 실험으로 퉁퉁 부은 피험자의 손. 출처: 유튜브/JTBC Culture
동상 실험으로 생긴 동상. 출처: 유튜브/JTBC Culture

또한 군의관 다니무라 가즈히루는 1941년 2월 6일 이른 아침 실험 대상자들에게 젖은 양말이나 장갑을 착용시킨 후 술을 먹이거나 아트로핀을 투여하는 등의 여러 조건을 설정해 동상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물만 마시며 버티는 실험도 했습니다. 1935~1936년까지 도고 부대에서 복무한 구리하라 요시오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본인은 군속 스가와라 사토시 씨 밑에서 물만 마시면 며칠 동안 사는가를 실험했다. 그 결과 보통 물로는 45일, 증류수로는 33일을 살았다. 증류수만 먹은 사람은 죽음이 가까워지자 '맛있는 물을 달라'고 호소했다"

 

3. 의학 실습

잔혹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731 부대 의사들. 출처: Wikimedia Commons
잔혹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731 부대 의사들. 출처: Wikimedia Commons

1945년 5~6월 규슈제국대학 의학부 제1외과 이시야마 후쿠지로와 제자들은 격추된 미군 B29 탑성원 포로 8명을 대상으로 수술 실험을 했습니다. 수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5월 17일 포로 2명의 한쪽 폐를 전부 적출
  • 5월 22일 포로 2명 중 1명에게 위 전 적출 수술. 대동맥을 압박해 지혈하고 심장 정지시킨 후 개흉 심장 마사지, 심장 수술, 나머지 1명은 상복부 절개하고 담낭을 적출, 간장의 편엽을 절제
  • 5월 25일 포로 1명에게 뇌수술(3차 신경 차단)
  • 6월 2일 포로 3명 가운데 1명에게 오른쪽 대뢰동맥에서 약 500cc를 채혈한 후 대용 혈액약 300cc 주사. 1명에게 폐동격 수술, 나머지 1명에게 담낭 적출, 대용 혈액 200cc 주사, 간장 절제, 개흉 심장 마사지, 심근 절개 및 봉합, 대동맥 압박 지혈

동상 실험을 했던 다니무라라는 인물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야외 실습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니무라는 동계 위생 연구반을 조직해 텐트에서의 수술, 지혈, 수혈 등에 대해 가르치는 야외 실습을 했는데요. 중국인 8명을 생체 실험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이 8명은 실험이나 수술이 끝난 뒤 살해돼 생체 해부용으로 쓰이거나 총살됐다고 합니다. 

731부대의 실험에 희생되고 있는 피험자. 출처: Wikimedia Commons
731부대의 실험에 희생되고 있는 피험자. 출처: Wikimedia Commons

이 외에도 피험자들의 혈액을 이용한 실험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속원심분리기로 사람을 마구 돌려 사람의 생피를 짜내는 착혈 실험과 인간과 말의 피를 서로 교환해보는 인마혈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아

 

2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은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731 부대 사람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731 부대가 진행한 모든 실험 데이터를 미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부대 간부들을 제소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미국 내 연구소들은 윤리적인 이유로 인체 실험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731의 인체 실험 연구 결과들은 미국에 여러 모로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1947년 8월 1일 미국 정부는 전범 면책을 추진했는데요. 같은 해 12월 미국의 에드윈 V. 힐은 다음 말로 보고를 마무리했습니다.

일본 과학자가 수백만 달러와 긴 세월을 들여 얻은 데이터다.

특정 세균의 인간에 대한 감염 및 발병에 관한 이런 정보는 우리 연구소에서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실험을 우리가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이터는 오늘까지 총액 25만엔으로 수행됐으며

연구에 걸리는 실제 비용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생체 실험 주범들에게 월급을 주고 실험 인원으로 고용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화학전 요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까지 요청했습니다.

 

731 부대의 과학자들은 전쟁에서 패망하자 인체 실험을 한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이시이 시로는 일본이 미군에 항복하자 부대에 남아있던 포로들을 학살하고 실험용 쥐를 풀어 증거를 인멸했다고 합니다. 이시이 시로 또한 부대원들에게 비밀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뒤 미국에게 실험 데이터를 넘기는 조건으로 면책을 받았습니다.

 

또한 일본 의학계는 731 부대 관계자들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고 합니다. 731 부대가 작성한 여러 논문이 있는데요. 이 가운데는 731 부대 시절에 작성한 육군 군의학교 방역 연구 보고 게재 논문을 학위 논문으로 그대로 제출해 통과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731 부대가 작성한 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조직 내에 있는 페스트균 염색법에 관한 연구(게이오, 1946)
  • 파상풍과 키소이드의 예방적 효력에 대해(구마모토, 1946)
  • 이질균 분류에 대해(구마모토, 1946)
  • 장기 손상의 후유 기능 장해에 대해(도쿄, 1947)
  • 뇌척수액 당량의 변화에 대한 연구(니가타, 1949)

또한 2018년 3월에는 1945년에 발표된 <개벼룩을 통한 페스트 매개 가능성>이라는 교토대학교 논문이 731 부대가 자행한 인체 실험일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왔습니다. 논문에는 원숭이에게 개벼룩을 옮기자 원숭이가 두통을 느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가츠오 의대 니시야마 명예교수는 두통의 자세하고 사실적인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에게 행해진 실험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피험자들을 이용해 동상 실험을 했던 요시무라 히사토는 독일에서 "의사들은 인체 실험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지도 모른다"는 변명을 내놨습니다. 요시무라 역시 교토 부립 의과대학에서 교수에서 학장으로 승진했으며 1978년에는 '환경적응학'에서 선구적인 실적을 올렸다는 이유로 훈삼등욱일상을 받았습니다.

 

나치와 731 부대는 사람을 대상으로 극악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독일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에 소속됐던 23명의 피고 중 15명이 '인류에 대한 범죄'로 유죄 판정을 받았고 7명에 교수형 선고가 내려졌는데요. 반면 일본 731 부대는 아직도 일본 정계와 보건, 의료계에서 버젓이 힘을 과시하며 세를 유지 중입니다. 

2007년 4월에 개최된 제27회 일본의학회 총회 프로그램 중 '전쟁과 의학' 전시 실행 위원회 주최 심포니엄에서 미국 하버드대학교 위크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거 세대의 부정은 특히 그것이 은폐됐을 경우에는

현재 세대의 무거운 짐으로 그대로 남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731 부대의 경우 일본의 과학자들과 이러한 거래를 했기 때문에

일본이 안고 있던 비밀이 우리가 안고 있는 비밀이 되어버렸습니다. 

 

조사를 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성실하게, 솔직하게, 정확하게 드러내고 과거를 직시해야

우리가 늘 가지고 싶던 가치관을 긍정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만이 과거와의 공범 관계로부터

젊은 세대를 해방시켜 과거의 부정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젊은 세대에 은폐나 공범의 전통을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대신

그들을 이 책임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 전쟁과의료윤리검증추진회 및 스즈키 아키라 <731 부대와 의사들>
  • 강준만 <미국사 산책 7 - 뜨거운 전쟁과 차가운 전쟁>
  • 신규환 <질병의 사회사>
  • 최석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 권복규 <생명 윤리와 법>
  • 김지희, and 이시영. "생물작용제를 포함한 대량살상용 생물학적 무기에 대한 역사 및 법률적 안전규제 사항에 관한 고찰." 한국안전학회지 (구 산업안전학회지) 22.4 (2007): 1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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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2019-07-26 10:51:40
독일전범이 작살난건 세계경제와 미디어를 쥐고있는 유대인을 건들었기 때문이고 일본 전범이 괜찮은건 1950년, 그 시절의 중국과 한국인을 유린했기 때문이지. .

박한결 2019-07-21 15:26:06
역시나 조센징답게 기사가 감정적이구나. 결국 저때 센징이들로 인해 과학계가 발전한 거잖아. 미국한테 붙어서 기술탈취해놓고 자기가 이룬거라 정신승리하는 조센징들아, 저게 니네가 과학계에 기여한 최초이자 마지막이야 ㅋㅋ 저런건 왜 국뽕 안들이키냐? 항상 지 주제를 모르는 센숭이들에게 교육을 해줬네 ㅋ 저건 당연히 센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김용민 2019-07-20 17:17:13
어떡해 미국이는 일본의 진주만공격을 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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