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4일, 미국 동부 시간으로 7시 49분 50초. NASA의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국제천문연맹은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지금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돼 '소행성 134340'이란 이름이 부여됐습니다. 이 글에선 읽는 분들의 편의상 명왕성으로 부르겠습니다.
피아노 크기의 이 탐사선은 명왕성 1만 3천 km 상공을 지났습니다.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명왕성 표면을 컬러로 찍은 아름다운 고해상도 사진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명왕성이 품고 있는 거대한 하트 사진을 들 수 있죠.
책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에 따르면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을 가까이 지나간 당일, NASA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에서는 10억 회가 넘는 조회가 이뤄졌습니다. NASA는 화성 착륙 때 1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경험하긴 했지만 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반응이었다고 밝혔습니다.
1. 명왕성이 살아있다
책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에 따르면 명왕성 표면에서는 지금까지 지질학적 활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을 탐사하기 전 일부 사람들은 명왕성이 지질학적 측면에서 비교적 죽은 행성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왜냐하면 직경이 약 2,370km로 크기가 워낙 작은 데다 토성의 위성인 엔셀라두스에서처럼 제공받을 수 있는 조석마찰 열원(Tidal heat source)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조석마찰(Tidal heat)열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궤도 있는 두 천체 사이의 차등중력(혹은 조석)때문에 행성이나 위성의 내부 열이 증가하는 걸 말합니다. 중력은 거리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두 천체 사이의 중력은 천체의 내부와 균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심성 궤도에 있는 위성과 행성 사이의 거리 변화는 천체 내부에 작용하는 중력의 변화를 초래할 겁니다. 이러한 힘의 변화는 천체의 구조를 왜곡시키고 내부에 엄청난 양의 열을 발생시킵니다.
또 태양과의 거리도 멀어 태양에너지를 많이 받기 힘듭니다. 따라서 태양계의 다른 행성을 탐사한 전례에 비춰볼 때 명왕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질학적 활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뉴호라이즌스호는 지질학적 활동의 증거를 찾았습니다. 명왕성 표면을 자세히 보니 지역별로 시기가 각기 다른 흔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외부 충격 구덩이가 많은 지역이 있는가 하면 구덩이가 하나도 없는 비교적 최근 생성된 지역도 확인됐습니다. 40억 년에 이르는 역사 동안 명왕성에서 꾸준히 지질 활동이 이뤄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명왕성은 지금도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구에서처럼 마그마가 분출하는 건 아닙니다.
명왕성 지표에는 차가운 물과 얼음이 솟구쳐나오는 얼음화산(cryovolcanism)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NASA 자료에 따르면 얼음화산으로 추정되는 산은 라이트 몬스(Wright Mons)와 피카드 몬스(Piccard Mons)입니다. 스푸트니크 평원(Sputnik Planitia) 남쪽인데요. 스푸트니크 서쪽에 바이킹 테라 지역(Viking Terra)에 길게 갈라진 지구대는 명왕성 표면 전체에 한 때 흘렀던 얼음화산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2. 명왕성의 겨울왕국
명왕성에서 발견된 활발한 지형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곳을 꼽으라면 스푸트니크 평원의 광대한 얼음일 겁니다. 명왕성의 하트의 서쪽 지대에 해당하는 이 평원은 깊고 넓게 뻗은 질소 얼음 층에 메탄과 일산화탄소가 박혀 있는 형태입니다. 이 얼음층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움푹 패였습니다. 고대에 일어난 충돌로 생긴 분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지 주변의 산악지대로부터 질소 빙하가 공급돼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물 얼음 빙산이 떠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평원에 저장된 엄청난 양의 질소는 계절과 기후에 따라 대기 중과 표면의 질소 양이 급격하게 변화한다고 하는데요. 스푸트니크 평원이 심하게 침식돼 있을 때가 있는가 하면 훨씬 더 많은 질소로 가득찼을 때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분지를 에워싼 고지대에 빙하가 훑고 간 자국이 있는 것이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하는데요. 태양계 어디에도 스푸트니크 평원과 비슷한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3. 명왕성 "under the sea"
NASA 자료에 따르면 스푸트니크 평원은 약 40억년 전 명왕성의 얼음으로 뒤덮인 지표에 50~100km 크기의 물체가 충돌하며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카이퍼 벨트의 물체와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카이퍼 벨트는 태양계의 해왕성 궤도보다 바깥쪽인 지역입니다. 소행성과 같은 천체가 밀집한 도넛 모양의 영역을 가리키는데요. 이곳에서 날아오는 물체들과 충돌하며 분지 바닥으로 물이 솟아올라 분지를 채웠고 현재의 질소 얼음 층이 만들어졌습니다.
NASA의 뉴호라이즌스호 관측에 따르면 스푸트니크 평원은 명왕성의 조력축(tidal axis)과 정렬돼 있었습니다. 명왕성의 가장 큰 위성인 카론(Charon)의 중력을 끌어당기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은 스푸트니크 평원 부근에 집중된 얼음 무게 때문에 명왕성이 카론과 나란한 방향으로 조정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명왕성 내부와 얼음처럼 차가운 표면 중간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여 '마찰적으로 분리'됐을 때에만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명왕성 나이를 고려해봤을 때 바다가 존재한다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얼었어야 합니다.
이후 연구진은 명왕성이 액체 상태의 물을 품은 배경으로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꼽았습니다.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지구에선 영구 동토층이나 심해저에서 볼 수 있는데요. 저온·고압 상태에서 탄소(C)성분의 기체인 천연 가스가 물 분자와 결합해 생기는 고체물질입니다. 일명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기도 하죠. 연구진들은 명왕성에 가스 하이드레이트로 이뤄진 층이 단열재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액체 상태의 물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Nature Geoscience>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점성이 높고 열전도도가 낮아 단열의 특성을 지닌 가스 하이드레이트의 단열층이 스푸트니크 평원에 존재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연구팀은 단열층을 이루는 성분이 명왕성의 핵으로부터 나온 '메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명왕성 대기에 메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메탄이 가스 하이드레이트 층에 붙잡혀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4. 블루마블? 명왕성의 '파란 대기'
뉴호라이즌스호가 햇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찍은 사진입니다. 명왕성의 아름다운 '파란 대기'를 보여줍니다. 이 사진을 통해 분석한 결과 명왕성의 차가운 질소 공기 속에는 안개가 수십 개의 층을 이룹니다. 소량의 메탄과 일산화탄소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안개는 명왕성 표면에서 적어도 480km 높이까지 형성돼 있는데요. 다양한 지형 위에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동심원 모양을 나타냅니다.
명왕성 대기의 푸른빛을 띄는 안개는 대기 중에 일어나는 복잡한 화학 작용의 결과물인데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의 대기에서 관찰되는 유기 안개와 다소 비슷했습니다. 또한 공기 중에 포함된 메탄이 햇빛과 반응해 복잡한 유기분자를 만들고 이 분자들이 명왕성 표면에 비처럼 떨어지면서 명왕성은 붉은 빛을 띠게 됩니다.
또한 대기를 지닌 모든 행성에서는 끊임없이 기체 중 일부가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는데, 명왕성은 크기가 워낙 작아 중력이 낮기 때문에 탈출 속도가 낮습니다. 따라서 명왕성의 대기 중 질소와 메탄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됐는데요.
그런데 뉴호라이즌스호의 측정 결과는 달랐습니다. 질소의 소실 속도가 모델의 예측보다 1만배 이상 느렸습니다. 대기권 상층부가 예상보다 훨씬 더 차갑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즉, 분자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져 명왕성을 벗어나 탈출할 수 있는 분자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대기의 온도가 왜 이렇게 낮은지는 아직 수수께끼입니다.
5. 사하라? 고비? '명왕성 사막'
명왕성에도 수백 개의 모래 언덕이 스트푸니크 평원 서쪽 가장자리에 자리합니다. 최소 75km에 걸쳐 펼쳐져 있습니다. NASA에 따르면 이 모래 언덕은 비교적 최근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래 언덕은 작은 입자를 운동시킬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만들어집니다. 지속적으로 부는 바람이 대표적이죠.
스푸트니크 빙하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얼음 산에서 입자를 공급하고, 명왕성의 질소 빙하에서는 바람이 생성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구의 석영, 현무암, 석고로 이뤄진 모래를 강풍급의 바람이 옮기는 지구의 모습과 달리 명왕성에서는 작은 모래 알갱이 크기의 메탄 얼음 알갱이를 20 mph의 속도로 부는 바람이 운반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모래 언덕 크기를 고려할 때 과거에는 바람이 더 강하고 대기도 훨씬 더 두꺼웠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책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은 헌신적이고 끈기 있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26년 간 노력한 끝에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꿈의 탐사 계획을 어떻게 실현시켰는지 기록합니다. 뉴호라이즌스호 탐사를 이끈 NASA의 행성과학자 앨런 스턴(Alen Stern)은 1980년대부터 명왕성 탐사를 계획하며 뉴호라이즌스호를 진두지휘 했는데요. 우주생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데이비드 그린스푼(David Grinspoon)과 함께 뉴호라이즌스호의 우주탐사 계획, 구상, 승인, 재원마련, 우주선 제작과 발사, 성공적인 비행에 어떤 노력이 들어갔는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외압에도 명왕성 프로젝트를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명왕성 탐사를 향한 인류의 첫 번째 미션이자, 아직도 끝나지 않은 뉴호라이즌스호의 탐사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참고자료##
- 앨런스턴, 데이비드 그린스푼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푸른숲(2020)
- Tricia Talbert, “Five Years after New Horizons’ Historic Flyby, Here Are 10 Cool Things We Learned About Pluto”, NASA (July 15, 2020)
- Shunichi Kamata et al. ,“Pluto’s ocean is capped and insulated by gas hydrates”, nature geoscienc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