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웃집과학자에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강재환 박사입니다. 저는 올해 여름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2020년 가을 현재 캘리포니아 공대1) 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천문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 바로 옆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언제나 이웃이지요. 미국으로 나오기 전에는 저도 학교 도서관에서, 동네 도서관에서, 천문학과 물리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간접 경험하고 사색에 빠지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이웃집과학자에 글을 연재할 기회를 얻어 아주 뜻깊습니다. 우주의 시작이 궁금한 분들,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 궁금한 분들, 우리는 우주의 모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분들, 모두 편한 마음으로 이웃이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우주, 하면 많은 생경한 풍경이 떠오른다. 태양계 탐사선들이 보내온 신비로운 행성 표면의 모습들,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아름다운 은하 사진들, 지구상에선 상상할 수 없던 모습들이 우주에 있다.
우주 공간은 너무나 넓다. 인류가 직접 도달한 지구 밖의 천체는 달이 유일무이하다. 화성까지 유인탐사할 야심 찬 계획도 있지만, 넘어야할 산이 많다. 지구에 묶여 있는 달에 비해 화성은 매우 멀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은 무인 탐사선을 보내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런 태양계는 수천억 개의 별이 모여 있는 우리 은하의 특별하지 않은 변두리에 작은 지역을 점유할 뿐이며, 우리 은하는 수천억 개의 은하들이 그물처럼 퍼져 있는 우주의 거대한 구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우주는 또 아주 오래되었다. 지구 상의 모든 돌멩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다. 태양이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하기도 훨씬 전부터, 우주는 안에 있는 모든 별의 나이보다도 오래도록 존재했을 것이다.
이 연재 시리즈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탐구를 하는 관측 천문학의 이야기 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우주의 기원에 다가가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과거의 모습을 찾아 나선다는 말이다.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시작을 밝히려 찾아내는 모습은 그 어느 풍경과 비교해도 새롭고, 마치 현대 미술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한다. 반짝이는 은하 사진이나, 삭막한 행성 사진처럼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풍경과는 다르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다양한 우주의 모습을 보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관측하는 행위를 음미하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자.
비가 온 뒤 촉촉한 땅을 떠올려 보자. 하늘에는 잔잔히 남아 있는 구름, 그 앞에는 무지개가 아름답게 솟아 있다. 촉촉해진 땅에는 지렁이가 기어나와 기지개를 편다. 그런데 지렁이는 아름다운 무지개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 온 뒤에 흙 밖으로 나오지만 하늘에는 무엇이 있는지 음미할 수 없는 것이다. 무지개 빛깔을 보는 것은 지렁이에겐 초능력이다2).
이제 무지개 너머 하늘 위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해 보자. 하늘 위 우주의 모습은 우리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낮에는 푸르고, 밤에는 컴컴하다. 우주의 모습을 음미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초능력이다. 따라서 우리 눈으로부터 숨겨진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는 망원경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초능력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빛은, 빛의 다양한 모습 중 일부에 불과하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진동하며 전달되는 전자기파다. 빛은 속력이 일정하기 때문에 파동이 짧아지면 1초당 진동하는 횟수는 늘어나고, 이를 주파수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무지개 빛깔로 인식하는 가시광선은 빛의 파장이 짧은 보라색부터 파장이 긴 붉은색까지, 약 400에서 700나노미터 사이의 아주 짧은 파장을 가지고 있다. 1초에 수백조 번 진동하는 높은 주파수에 해당한다. 붉은색 보다 파장이 긴 빛은 붉은색 바깥에 있다고 해서 적외선이라고 부르고, 보라색보다 짧은 빛은 보라색 바깥에 있다고 해서 자외선이라고 부른다. 이들보다 파장이 더 길어지고 짧아지는 빛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초당 일억 번 정도 진동하는 빛은 FM 라디오에 사용된다. FM 100 메가헤르쯔, 라고 라디오 채널이 나오면 일억 번 진동하는 빛을 이용하는 라디오 채널이라고 보면 된다. 병원에서는 엑스선을 이용해 몸 내부 사진을 찍기도 한다. 빛은 주파수가 높을 수록 큰 에너지를 가진다. 엑스선과 같이 주파수가 높은 빛은 에너지가 커서 많이 쬐면 몸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만약에 가시광선 외의 다른 빛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일상 생활에서도 이용하는 라디오나 핸드폰 같은 장비들에서 나오는 전파들이 방 안을 그득히 채우는 무지개 빛깔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주에는 인간이 만든 전자 장비가 뿜는 빛처럼, 우주가 만들어낸 다양한 파장의 빛이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를 연구하는 데는 빛의 관측이 중요하다. 무지개 빛깔 가시광선 이외에 다른 파장대에서 오는 빛이 모두 우주 곳곳의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 주고, 나름대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천문학자들은 그런 다양한 파장대의 빛에 민감한 망원경을 만들어 인류가 우주를 보는 새로운 초능력을 개발한다.
천문학자들은 마치 마블(Marvel) 영화의 세계관에서 각자의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있듯이, 빛의 파장별로 역할을 맡는 망원경들을 개발해 왔다. 지구 대기의 영향을 최대한 벗어나 높은 산 위에서 관측하는 거대한 망원경도 있고, 아예 대기를 지나 우주에 올려 놓고 보는 우주 망원경도 있다. 지구 대기는 자외선과 엑스선 등 생명에 해가 되는 높은 에너지의 빛을 막아준다. 하지만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런 높은 에너지의 현상을 보기 위해서는, 우주로 망원경을 쏘아올려야만 한다.
다양한 망원경들을 하나 하나 소개하자면, 슈퍼히어로 영화가 각 캐릭터별로 시리즈가 나오듯이, 너무 큰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연재 시리즈의 주인공은 우주의 기원을 찾아가는 망원경이다. 앞으로 소개할 이 망원경은 전파를 관측하는 전파 망원경이라는 것을 밝히며, 다른 초능력을 가진 망원경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다른 칼럼이나 책을 찾아 보는 재미를 위해 아껴두기로 한다.
우주의 시작은 거대한 대폭발, 빅뱅(Big Bang)으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빅뱅이라면 엄청나게 큰 에너지가 일어났을 것 같은데, 왜 에너지가 낮은 전파를 관측할까? 빅뱅 우주는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진 이론이라 들었는데, 왜 빅뱅 우주의 모습을 더 탐구하려고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빅뱅 이론은 어떻게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우주의 시작엔 어떤 비밀이 더 숨겨져 있을까? 앞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행을 함께 하자.
PS: 천문학 연구에 한해 초능력을 논했지만,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부분에서 인류가 과학과 기술로 이룩한 수많은 초능력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신발을 신어 발을 다치지 않으면서 멀리 뛰어갈 수도 있고, 안경을 쓰고 시력을 보정하기도 하며, 컴퓨터의 도움으로 수많은 자료 틈에서 검색할 수도 있지요.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등으로 놀라운 거리를 짧은 시간에 이동하기도 하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도 훨씬 크게 낼 수도 있습니다. 인간 본연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이렇게 도구의 도움으로 얻어진 초능력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재미있을 겁니다. 우리는 또 어떤 초능력을 얻어낼까요?
1)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줄여서 Caltech(칼텍)으로 주로 부릅니다.
2) 사실 지렁이가 편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켜려고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빗물 찬 땅에서 호흡하기 어려워져 숨을 쉬러 흙 밖으로 나온다.
글: 강재환(스탠퍼드대학교 물리학과 이학 박사)
現 캘리포니아공대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