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의 어원은 콩고 단어인 은잠비(콩고어: Nzambi, 신)와 숭배의 대상을 뜻하는 줌비(Zumbi)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두교'라는 종교에서는 '영혼을 뽑아낸 존재'를 좀비라고 정의하고 있는데요. 통상적으로 좀비란 '부활한 시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일명 '좀비세포'가 있습니다. 바로 노화세포인데요. 노화세포는 죽지 않습니다. 수십년 동안 조직에서 버티는데, 이게 꼭 좀비 같습니다.
국립암센터 자료를 보면 원래 세포는 세포 내 조절 기능에 따라 분열하며 성장하고 죽어 없어집니다. 특히 어떤 원인으로 세포가 손상됐을 때 치료를 받아 회복되고 정상적인 세포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회복이 안 된 경우 스스로 죽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몸은 세포수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 때문에 이러한 증식과 억제가 조절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세포들이 생깁니다. 심한 경우 암으로 발달하기도 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속에는 40~50번의 세포 분열 후 더 이상 분열을 할 수 없는 노화세포가 쌓입니다. 분열을 멈춘 노화세포는 염증 인자도 방출합니다. 책 <노화의 종말>에 따르면 노화세포의 축적은 노화의 핵심 양상입니다. 문제는, 노화세포가 좀비 상태로 버티면서 염증을 일으키고 심지어 악성종양인 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 염증 인자가 바로 사이토카인(Cytokine) 단백질입니다. 노화세포는 세포 분열을 하지 않지만 사이토카인은 계속 분비합니다. 이 단백질은 염증을 일으키고 대식세포라는 면역세포를 끌어들여 조직을 공격하게 만듭니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만성 염증으로 이어지죠. 다발경화증, 염증성창자병, 건선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염증은 심장병, 당뇨병, 치매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렇듯 '좀비세포'는 우리 몸에 여러 모로 해로워 보이는데요. 우리 몸은 왜 이 세포들을 그냥 없애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진화의 결과
1950년대 진화생물학자 조지 C. 윌리엄스는 이에 대해 "인간이 30~40대가 됐을 때 암을 막기 위해 진화시킨 꽤 영리한 책략이 바로 노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화세포는 분열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더라도 분열하지 않으니 쉽사리 악성종양, 즉 암으로 발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화세포가 암을 막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면 노화세포가 결과적으로 인접한 조직에 암을 유발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조지 C. 윌리엄스는 '맞버팀 다면 발현(Antagonistic Pleiotropy)'라는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젊을 때 우리에게 유용한 생존 매커니즘이 늙었을 때 나타날 문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보존된다는 개념인데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블라바트닉연구소 유전학 교수이자 폴 F.글렌노화생물학연구센터 공동 소장인 데이비드 A. 싱클레어(David A. Sinclair) 박사는 실제로 이 방식이 잘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싱클레어 박사는 "우리 진화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평균 수명이 50세를 넘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따라서 암의 확산을 늦추는 매커니즘이 그 이후에 암 등의 질환들을 일으킬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기를 수 있을 때까지 멀쩡하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리하면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연장됐지만 우리 몸은 이 늘어난 수명에 걸맞게 진화를 일으킨 상태가 아니어서 노화세포가 되레 말썽을 일으킨다는 설명입니다.
좀비세포 파괴했더니 긍정적 결과
이 노화세포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면 어떨까요? 좀비세포 즉, 노화세포는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죽여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는데요.
<Nature>에 게재된 분자생물학자 대런 베이커(Darren Baker)와 얀 판 되르선(Jan van Deursen)의 연구에 따르면 생쥐의 몸에서 노화세포를 파괴하자 수명이 20~30% 늘어났다고 합니다. 콩팥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활동했으며 심장도 스트레스에 더 잘 견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질병의 동물 모델에서는 노화세포를 죽이자 폐의 섬유증이 완화되고 녹내장과 뼈관절염의 진행이 느려졌습니다. 갖가지 종양도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뉴욕 로체스터의 메이오병원에서 일하는 미국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제임스 L. 커클랜드(James L. Kirkland)는 이러한 좀비세포를 표적 삼은 '노화세포제거제'를 개발했는데요. 책 <노화의 종말>에 따르면 그는 케일, 붉은 양파에 들어있는 '케르세틴(quercetin)'과 백혈병의 화학요법에 쓰이는 '다사티닙(dasatinib)'이라는 분자 약물을 이용해 생쥐의 노화세포를 제거했고, 쥐 수명을 36% 늘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노화세포제거제는 향후 사람에게도 활용될 전망인데요. 뼈관절염에 걸린 관절, 시력을 잃어 가는 눈, 섬유증이 생겼거나 화학요법으로 치료가 잘 안되는 폐에 집어넣어 그 부위들의 노화를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노화세포제거제를 사람에게 투여한 첫 임상은 2018년 진행됐다고 합니다. 노화세포가 쌓이며 생기는 질환인 뼈관절염과 녹내장을 치료하는 목적이었다고 하는데요. 싱클레어 박사는 "이런 약물을 모두에게 처방할 수 있을 만큼의 효과와 안전성을 갖추려면 몇 년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노화세포의 수를 파악하는 일을 비롯해 노화세포를 없애는 약물의 부작용을 없애고 이를 종합해 노화세포 제거 기술을 개선하려면 아직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편, 말이 나온 김에, '진짜 좀비'의 미스터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사람은 Wade Davis라는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The Serpent and the Rainbow>라는 저서에서 좀비 상태를 만들어내는 가루를 발견했다고 하는데요. 그 가루는 복어독으로 유명한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입니다. 강력한 신경독(neurotoxin)이죠. 이 독은 말초 신경과 중추 신경에 작용해 체내의 Na+(Sodium) 채널을 막아 신경 전달을 억제합니다. 몸은 마비되고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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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노화의종말>은 노화와 유전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인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가 25년 장수 연구를 집대성해 최초로 공개하는 역작입니다. 노화는 질병이며 이 질병은 치료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연하고 중단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는 역전시킬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더 젊고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참고자료##
-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노화의 종말”, 부키출판사
- Callaway, Ewen. "Destroying worn-out cells makes mice live longer." Nature News (2016).
- Xu, Ming, et al. "Senolytics improve physical function and increase lifespan in old age." Nature medicine 24.8 (2018): 1246-1256.
- Laberge, Remi-Martin, et al. "MTOR regulates the pro-tumorigenic senescence-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by promoting IL1A translation." Nature cell biology 17.8 (2015): 1049-1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