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부동산 분야 베스트셀러의 시초, 살만한 곳을 알려주는 주거에 관한 가르침을 기록해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이중환의 '택리지' 입니다. 바로 택리지에 소개된 염전 위치를 분석해 조선시대의 해수면 변동을 복원한 연구결과가 나왔는데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원장 직무대행 김광은, KIGAM) 국토지질연구본부 남욱현 박사 연구팀은 조선시대 염전 위치에 따른 소금 생산 지역과 수송 경로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1500년대 초반에서 1700년대 중반에 걸쳐 전북 고창군 곰소만 해역의 해수면이 낮아졌다가 상승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소금인 자염은 갯벌의 염전에서 나오는데, 염전의 대부분은 밀물이 들어오는 끝자락에 위치합니다. 연구팀은 이러한 점에 착안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지봉유설(1614), 택리지(1751), 지방지도(1872) 등 고문헌에 나와 있는 전북 고창군 곰소만 해역의 염전을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연구팀은 곰소만으로 흘러드는 갈곡천 하류의 시추 조사를 통해 해수면이 낮아졌을 때 갯벌 흙이 공기 중에 노출돼 만들어진 고토양을 발견했는데요. 고(古)토양은 퇴적암에 남아 있는 옛 지질 시대에 생성된 토양으로 과거에 조사 지역이 지표면이었음을 밝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연구팀은 고토양을 비롯한 시추 조사 자료의 정밀한 분석을 통해 1530년 무렵에는 염전 위치가 해안에서 800m 떨어져 있으며 바닷물이 밀물로 가장 높아졌을 때의 수위, 즉 만조선(滿潮線)의 높이가 1.6m 정도임을 확인했습니다. 220년이 지난 1750년 즈음에는, 2.2m로 약 0.6m 높아졌습니다. 1872년 지방지도에 나온 곰소만 줄포항 앞바다의 깊이는 4.37m로, 만조 때의 수심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그림1 참조).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서해안의 평균 해수면은 지구온난화 등 인위적 영향으로 매년 1.31mm씩 높아졌는데요. 이번 연구결과로 1500년대 초반에서 1700년대 중반의 서해안에는 자연적 요소에 의한 비교적 큰 폭의 해수면 변동(매년 1.3~1.4mm 정도)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남욱현 박사 연구팀은 곰소만 해역의 시추 조사와 분석을 통해, 전지구적 기후변화와 해수면 변동에 한반도가 특히 민감하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습니다. 넓고 편평하게 발달한 서해안 갯벌의 특성상 해수면 높이가 조금만 변하더라도 해안선 변화 폭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해수면 변동과 같은 자연환경의 변화가 조선시대의 해상 교통, 물류 이동 등과 같은 백성의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요. 곰소만 지역의 해수면 상승 복원 연구는 한반도의 해수면 상승이 소빙기 말(1850년 무렵)보다 더 일찍 시작됐다는 것을 유추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700년대 초 그린란드 빙하의 해빙이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 상승을 유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신저자인 남욱현 박사는 “우리 조상들이 택리지 등 고문헌에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소개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주거의 이동 경로 등을 나타내주는 귀중한 연구자료다”고 말하며, “전 지구적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서해안에서는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후속 연구를 통해 미래의 해수면 변동에 대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광은 원장 직무대행은 “남욱현 박사 연구팀의 이번 연구결과는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서해안의 해수면 변동을 복원한 사이언스 온고지신의 대표적 성과다.”고 밝히며, “기초 연구부터 실증▪상용화 연구의 전주기적 기후변화 연구를 통해 탄소중립 2050의 실현을 목표로 모든 연구자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중심으로 경북대, KAIST, 인하대, 미 터프츠대학 등의 연구진이 참여했으며, 해양지질학 분야 세계적 권위지인 '마린 지올로지 (Marine Geology, IF:3.04)'에 ‘Sea-level fluctuations during the historical period in Gomso Bay, Korea’의 제목으로 발표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