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문연구원(이하 ‘천문연’)은 지난 2019년부터 최근까지 태양계 가장 바깥에 있는 무리의 천체 26개를 발견해, 소행성센터(Minor Planet Center)로부터 공인받았습니다. 이는 최근 3년간 천문학자들이 보고한 해왕성바깥천체(이하 TNO, Trans Neptunian Object) 86개 중 약 1/3을 차지합니다. 양계 최외곽 행성인 해왕성 너머에는 태양계 초기의 역사를 간직한 많은 소천체들이 공전하는데, 이들을 TNO라 부릅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TNO는 명왕성입니다.
이번 발견은 천문연이 칠레, 호주, 남아공에서 운영 중인 외계행성탐색시스템(이하 KMTNet, Korea Microlensing Telescope Network) 중 칠레 관측소의 1.6m 망원경으로 이뤄냈습니다. 천문연 연구팀은 2019년부터 매년 4월경에 태양계 천체가 모여 있는 황도면을 집중 관측해, 최초 발견한 2019 GJ23을 비롯해 총 26개의 천체를 발견했는데요.
한 해 관측 결과로는 TNO의 대략적인 거리를 구할 수 있지만, 궤도를 알아낼 수 없어 여러 해에 걸친 관측이 필수입니다. 천문연은 KMTNet을 통해 17개의 천체를 최소 두 해 이상에 걸쳐 관측하는 데 성공, 궤도 특성을 파악했습니다.
TNO는 너무 멀고 어둡기 때문에 대부분 대형망원경을 통해서 발견합니다. 다른 기관이 발견한 60개의 천체는 모두 KMTNet보다 구경이 큰 망원경으로 관측됐습니다. 주로 4m급 내지 8m급 대형 망원경이었죠. 이번 성과는 작은 체급에도 불구하고 자체 시설로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투자해 이뤄낸 성과입니다.
태양계 초기 진화 당시 많은 천체들은 서로 충돌하거나 궤도를 바꾸는 이주 현상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TNO의 상당수는 태양계가 형성될 때부터 화석처럼 변하지 않고 같은 궤도를 돌고 있는데요. 따라서 동일한 궤도를 돌고 있는 TNO의 궤도 분포를 연구한다면 태양계 초기 역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특히 천문연이 발견한 천체 중 2022 GV6(이공이이 지브이 육)는 공전주기가 1,538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TNO 중에서도 희귀한 2022 GV6의 극단적인 궤도는 인류가 본격 탐색에 착수한 태양계 최외곽 지역의 소천체 분포를 통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발견을 주도한 천문연 정안영민 박사는 “2022 GV6와 같이 특이한 공전주기를 가진 천체들을 많이 발견하여 태양계 역사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다”며 “앞으로도 KMTNet으로 특이 천체 발견을 이어나갈 것”라고 말했습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우주탐사그룹장 문홍규 박사는 “TNO에는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천문학계의 관례”라며, “이번에 정안 박사가 발견한 천체의 이름을 국민공모를 통해 정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다”고 말했습니다.
#용어설명
1. AU(Astronomical Unit, 천문거리)
1AU =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로 약 1억 5천만 km
2. 해왕성바깥천체(TNO, Trans-Neptunian Object)
해왕성보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천체로 궤도장반경(타원궤도의 긴 반지름)이 해왕성의 30.1AU보다 큰 천체를 말한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극단적으로 태양계 안쪽까지 들어와 혜성과 같은 궤도를 도는 천체가 있는데,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천왕성 거리에 해당하는 20AU보다 가까이 다가오는 천체는 TNO에서 제외시켰다. 현재까지 발견된 TNO의 수는 약 4,000개에 이른다.
TNO와 흔히 혼용되는 카이퍼대천체(KBO, Kuiper Belt Object)는 더 포괄적인 개념인 TNO의 일부 집단으로 정의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소행성(asteroid)이라는 개념은 목성 궤도 안쪽에 있는 천체를 지칭하기 때문에, TNO는 소행성이라 부르지 않는다.
TNO의 상당수는 태양계에 형성 초기부터 변하지 않고 같은 궤도를 공전해 태양계의 화석이라 불린다. 그 밖의 TNO는 태양계 초기에 해왕성이 바깥으로 이동하면서, 또는 그 이후 중력 섭동의 영향으로 지금처럼 다양한 궤도를 갖게 됐다. 궤도가 바뀐 천체 일부는 태양계 안쪽으로 이동해 켄타우루스군 천체나 혜성으로 진화한다. 명왕성은 TNO에 속하며, 2005년에는 명왕성보다 더 무거운 TNO 에리스(Eris)가 발견돼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특히 최근에는 발견되지 않은 제9행성이 현재 TNO 궤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3.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 Korea Microlensing Telescope Network)
칠레와 남아공, 호주에 설치, 운영하는 24시간 ‘별이 지지 않는’남반구 천문대 네트워크로 보름달 16개에 해당하는 넓은 하늘을 찍는 카메라를 탑재해, 외계행성 탐색은 물론, 소행성 탐사관측에 최적화돼 있다. 천문연은 지난 2015년 말부터 외계행성 탐색 외에 초신성, 은하, 소행성 등 다양한 연구목적으로 KMTNet을 투입하고 있다.
4. 2022 GV6
2022 GV6의 지름은 약 100km, 궤도 주기는 1,538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해왕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필요한 165년보다 9배나 더 긴 시간이다. 이 천체는 2005년에 태양에 38AU까지 다가간 이후(근일점) 점점 태양계 외곽으로 이동 중이며, 1500년 뒤에는 228AU까지 멀어진다. 연구진은 2022 GV6의 임시이름과 느린 움직임에 착안해 ‘거북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특이 TNO에 가벼운 별명을 지어주는 것은 TNO 연구자들의 관례다. 현재까지 궤도주기가 1,500년이 넘는 TNO는 73개가 알려져 있으며, 이 중 근일점이 2022 GV6보다 먼 천체는 41개이다. 이 41개 천체 중 2022 GV6의 총 관측기간 15년보다 오랜 기간 관측기록을 갖는 천체는 5개에 불과하다. 2022 GV6의 궤도 장반경은 133AU로 극단적인 TNO 조건에 가까운 천체이며, 현재 해왕성의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분리천체(detached object)로 분류된다. 2022 GV6는 KMTNet을 통해 2021년과 2022년 두 해에 걸쳐 관측이 시도됐다. 연구진은 이때 얻은 궤도 추정치를 이용해 2019년, 2014년, 2007년에 해외 대형망원경의 관측자료에서 차례로 해당 천체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천문연의 연구진은 이처럼 총 15년에 걸친 관측자료를 이용해 비교적 정확한 궤도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다.